유고사태의 긴장이 갈수록 첨예해지는 가운데 유고 최대의 일간지인 폴리티카의 알렉산드라 미얄코비치(여) 기자가 5일 e-메일을 통해 본보에 현지사정을 자세히 알려왔다. 그는 지난해 4월 북대서양 조약기구의 유고 공습 당시에도 e-메일을 통해 유고 국민들의 처참한 삶의 모습과 정서를 본보에 생생히 전달한 바 있다. 미얄코비치 기자는 폴리티카에서 18년간 정치분야를 담당해 왔다.전무후무한 저항의 몸짓
세르비아는 요즘 거리 위에 있다. 지난달 24일 실시된 대선에서 국민대다수는 야당의 보이슬라브 코슈투니차 후보에게 표를 던졌고 이들은 현정권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선택을 수호하려는 모습이다.
반면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대통령은 권좌를 지키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그는 역전을 노리고 있는 2차 결선투표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바로 자신의 국민들을 서방의 아첨꾼 또는 배신자로 몰아부치고 있다.
국민의 자유의지와 민주적 선택을 명백히 무시하는 밀로셰비치에 대해 수십만의 시민들은 야당과 언론의 적극 지지 속에 세르비아 공화국 전역의 도시에서 파업과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들은 정권에 대해 전무후무한 저항의 몸짓을 보이고 있다.
이미 곤궁해져 있던 국민들의 생활은 공공 운송기관과 약국, 일부 의료기관들의 잇따른 파업으로 더욱 큰 부담을 진 것이 사실이다. 과거 무자비하던 경찰은 이번만은 매우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있다. 저항의 상징으로 떠오른 콜루바라 광산의 파업에서도 경찰은 과거에 보여준 어떠한 대규모 폭력도 행사하지 않고 있다.
'무자비' 경찰도 폭력 자제
시위는 곳곳에서 예기치 못했던 성과를 거두고 있고 동참인원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1991년 3월 등 과거 시위와 비교해 볼 때 이번 시위는 주요한 선례를 남겼다. 베오그라드의 대규m 산업시설들이 이번 주를 시작으로 강력한 항의의 의지를 담은 파업을 시작했다.
노동자들이 이처럼 대규모로 반 밀로셰비치 운동에 참여한 것은 처음이다. 지방의 분위기는 훨씬 과격하며 시위의 물결은 지금까지 밀로셰비치의 통제하에 놓여있던 지역언론 등 핵심기관들에까지 전파되면서 참여가능한 최대수준까지 번져나가고 있다.
특히 대학생과 국영언론기관 종사자들의 참여는 가장 두드러진 현상이다. 대학생들은 이번 시위의 장기화(어떠한 위기가 닥친다 하더라도)를 가능하게 해줬고 국영언론의 참여는 정권기반의 한 축을 허무는 효과를 가져왔다.
인쇄매체와 전파매체를 포함해 현재 모든 미디어는 소수의 언론인들에 의해 꾸려져 가고 있다. 경찰은 틀림없이 두개의 신문사(폴리티카와 베체른제 노보스티)와 국영 라디오방송을 사수하기위해 최선을 다하겠지만 이는 2일 노비 사드 방송국 점거 사태 때 보다 훨씬 힘들 것이다.
긴장은 점차 첨예해지고 있다. 밀로셰비치의 암담한 현실에 비춰볼 때 그의 행동은 예측하기 어렵다. 이미 전범재판소에 전범으로 기소된 상태인 그에게 있어 대선과 총선은 생사의 문제와 직결된 것이었다.
시민들은 밀로셰비치의 명령이 있더라도 군대와 경찰이 폭력을 사용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이처럼 첨예한 시기에 통제불가의 폭력이 사용된다면 밀로셰비치는 그의 생명을 포함해 그나마 건질 수 있는 모든 기회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이 경우 이미 쇠약해 진 밀로셰비치의 각종 억압장치들은 그에게 등을 돌릴 것이며 그의 당과 권력은 마치 10년 전 동구공산권이 붕괴한 것처럼 급속히 해체될 것이다.
"잃을것 없다" 날선 각오
야당의 선거승리는 유고 국민들로 하여금 12년간의 밀로셰비치 정권이 전쟁과 가난, 고립, 치욕 그리고 지난해 3개월간의 나토공습 이외엔 아무것도 가져다 준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국민들은 이미 많은 것을 잃었고 더 이상 그들의 인생에서 잃을 것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더 나은 미래와 자유에 대한 기대를 갖게 됐고 민주적 시민사회가 복구됐다.
지금까지 밀로셰비치에게 속아 그를 지지해왔던 세르비아인들도 이제는 그릇된 신념을 버리고 각오를 달리하기에 이르렀다. 이제는 거리에서 야당과 함께 그들의 새로운 선택을 수호하려는 세르비아인들을 발견하게 된다.
정리=이주훈기자 ju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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