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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남북문화를 생각한다 / (7)방송프로 교환에서 합작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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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남북문화를 생각한다 / (7)방송프로 교환에서 합작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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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0.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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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이 높아도 양쪽에서 허물기로 굳게 마음먹기만 하면 부수는 데 큰 어려움은 느끼지 않을 것이다. 작년 12월 '민족통일음악회'를 연출하기 위해 두 번 평양을 방문할 때만 해도 이처럼 진도가 빨리 나갈 줄은 정말이지 꿈에도 예상 못했다. 사소한 부딪침들이 끝도 없이 이어졌던 기억이 지금도 새록새록하다. 남과 북의 가수들이 어렵사리 한 무대에 섰으니 서로 노래를 바꿔 부르자고 제안했으나 일언지하에 거부당했다. '손에 손잡고'는 이래서 안 되고 '서울에서 평양까지'는 저래서 안 된다는 등 선곡과정도 고단하기는 마찬가지였다.한 줄로 서서 '반갑습니다'와 '다시 만납시다'를 합창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회의를 하며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으나 내가 흥분하면 그들은 길게 침묵했다. "이곳은 서울이 아니다"라는 걸 깨닫기까지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돌아와 보니 비난의 시선도 없지 않았다. 일방적으로 북쪽에 끌려 다녔다는 지적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솔직히 '내 탓이오'라고 선뜻 말하고 싶진 않았다. 바람직한 건 아니지만 통일은 어느 면에서 줄다리기와 유사하다. 어차피 끌어당기거나 끌려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느 지점까지에서 멈추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통일의 손익분기점을 계산하는 건 머리 아픈 일이라기보다 가슴 아픈 일이다.

남북의 방송교류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구할 때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한 장면이 시사하는 바 크다. 남의 병사는 자신이 건네준 초코파이를 북의 병사가 맛있게 먹자 "남에 오면 실컷 먹을 수 있으니 남으로 와서 함께 살자"라고 말한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북의 병사는 입 속의 것을 고스란히 게워내며 말한다. "내 꿈은 이 초코파이보다 훨씬 맛있는 과자를 북조선에서 만드는 것이다" 그의 표정은 단호하고 진지했다.

문제는 주체성과 포용력의 균형이다. 내가 접촉한 북한 방송인들의 자존심은 대단했다. "솔직히 자존심 빼면 뭐 있겠습니까"라고 노골적으로 털어놓기도 했다. 큰 그림에서 보면 서로의 아픈 구석은 건드리지 않는 게 예의다. 상호 존중의 원칙은 통일 교과서 제1과 제1장의 테마다.

굳이 광고 카피를 빌지 않더라도 '전파의 힘이 강하다'라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 힘을 좋은 데 써야 하는 까닭 또한 명료하다. 방송은 통일을 앞당길 수도 있고 가로막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통일을 위해 방송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실로 무궁무진하다.

남북방송교류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하나하나 추진해 나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처음엔 프로그램 교환으로 시작하여 나중에 합작하는 단계까지 범위를 넓혀 가는 것도 좋을 듯하다.

꿈 같은 이야기를 해 보자. '심야토론'이나 '백분토론'에 남북의 전문가들이 함께 출연하여 통일문제를 심도 있게 토론한다. 매일의 뉴스에 통일 꼭지를 상설한다. 남북의 연기자들이 함께 출연하는 미니 시리즈는 어떤가.

나의 경우는 남북병사들이 한 자리에 모여 노래하고 포옹하는 '우정의 무대'를 공동경비구역에서 연출하고 싶다. 남과 북의 대학생들이 함께 출연하는 '대학가요제'를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연출하는 날도 빨리 오기를 희망한다.

북한에서는 연출자를 사령관이라고 불렀는데 내가 느끼기에 북한의 연출가는 딱 한 사람, 김정일 국방위원장뿐이었다. 헤아려보면 2000년 여름을 강타한 한반도 눈물의 축제는 그의 연출 작품이라고 단정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레 허탈해 할 필요는 없다. 명작의 탄생은 연출 한 사람의 힘만으로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더구나 연출이 자만에 빠지지 않도록 감시하고 조언하는 일은 시청자의 신성한 의무이기도 하다.

통일은 모두가 똑같아지자는 게 아니다. 서로가 행복해지기 위해 함께 존중하고 더불어 노력하자는 데 의견과 행동을 함께 하는 것이다. 방송이 그 디딤돌이 되어야 한다.

주철환 (전PD, 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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