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으로 산업제품 디자인을 공급하는 A사의 마케팅담당 이모(28) 차장은 지난달 초 신문광고를 보고 깜짝 놀랐다. 자사 디자이너가 만든 디지털TV디자인이 TV셋톱 박스를 생산하는J사 광고의 배경그림에 이용됐기 때문이다.수소문 끝에 J사의 광고를 대행하고 있는 D사 관계자에게 알아보니 "셋톱박스 광고인 만큼 TV디자인을 일부 사용해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는 어처구니없는 대답을 들었다. 이차장은 "아이디어로 승부를 거는 벤처기업에게는 한 건의 아이템 도용이라도 치명적일 수 밖에 없다"며 "D사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 중" 이라고 말했다.
돈 가뭄으로 위기를 겪고 있는 테헤란 밸리가 벤처기업간 아이디어 도용과 계약위반 논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일부 벤처기업은 공모 등 투자유치를 앞두고 투자자를 현혹하기 위해 타사의 아이디어와 시스템을 도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인터넷 상에서 가상의 모델에게 각종 의류와 잡화 등을 입혀보고 코디네이션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해 서비스중인 H사는 한 경쟁업체가 비슷한 시스템을 개발했다며 대대적으로 홍보전을 벌이자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H사 관계자는 "시스템을 도용한 것은 물론 우리 회사가 제작한 디자인도 그대로 이용했다"며 "항의를 했더니 홈페이지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을 모두 삭제한 뒤 연락조차 끊고 있다"고 주장했다.
계약위반 논쟁에 휘말려 있는 벤처회사 가운데는 한글과컴퓨터와 씽크프리가 있다. 이 두 회사는 인터넷으로 오피스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서비스인 넷피스를 둘러싸고 서로 계약을 위반했다며 비난하고 있다.
한컴측은 "온라인 오피스웨어 기술을 가진 씽크프리에 용역을 주면서 국내 독점영업권은 우리측에 있다고 계약에 못박았는데, 씽크프리가 지난 3월부터 독자적인 국내서비스를 선언해 문제가 생겼다" 며 "용역을 다른 업체에 맡겼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씽크프리측은 "한컴이 서비스가 실시되면 사용량에 따라 로열티를 주기로 해놓고 무료선언을 했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불가피한 조치였다" 고 반박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위기감이 극에 달한 벤처업체들이 수익 올리기에 급급한 나머지 타사의 아이디어를 함부로 도용하는 등 기업윤리 해이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며 "벤처업계 전반에 도덕성 회복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황종덕기자 lastrad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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