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합정동 양군기획 사무실에서 만난 서태지(28)는 화장기 없는 얼굴에 비교적 밝은 표정이었다. 염색한 데다 부분적으로 가발을 붙였다는 붉은 레게퍼머는 흰 얼굴색과 대조되어 더욱 강렬해 보였다.그는 매주 한번 정도 있을 방송활동과 라이브공연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하루에 여섯 시간 정도 충분히 자서 그다지 피곤하지 않다고 했다. “인터뷰든, 스케줄이든 모두 내가 하고 싶은 만큼만 한다. 절대 필요 이상으로 무리하지 않는다.”
이야기는 조성모 측이 ‘서태지 특혜’를 이유로 출연을 거부했던 MBC ‘음악캠프’ 출연 문제로 넘어갔다.
사전녹화 등 제작 방식이나 특정 제작진이 맡아 줄 것을 요구한 데 대해 그는 “가수도 이제 뜻에 맞는 제작진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단호한 의견을 비친다.
“외국의 경우 무대 배치나 녹화방식, 카메라 샷 등 제작에 아티스트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된다. 이번에 그런 요구가 수용되는 걸 보면 우리 방송환경도 많이 선진화된 것 같다.” 며 “톱가수들을 한자리에 죄다 모아 자기 식으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외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 이라고 말한다.
앞으로 다른 방송사에 출연할 때도 이런 원칙을 지켜 나갈 생각이라고 했다.
‘제몫 찾기’에 대한 생각은 돈 문제에 있어서도 분명했다. 시중에서 분분하게 돌고 있는 ‘광고료 10억설’ 에 대해 그는 “15억”이라며, “사실 20억도 많은 액수는 아니다”라고 한다. “음악으로 번 돈은 아티스트가 가장 많이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 돈을 가수가 갖지 않으면 누가 갖겠는가? 나쁘게 쓰지만 않으면 돈은 충분히 벌어야 한다.” 그는 사실 그렇게 번 돈으로 이번 콘서트와 음반 배포를 무료로 할 생각도 했지만, 유통질서 교란 등 여러가지를 고려하다가 그만두었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음악은 대중적이지만 팬을 대하는 방식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난 서비스직이 아니라(웃음) 팬들을 개인적으로 만나거나 메일을 주고 받는 식의 ‘팬서비스’ 는 잘 못하겠다.”
96년 은퇴선언 이후 원치 않는 간섭을 피하기 위해 그는 두번이나 집을 옮겼고 현재 그 위치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그는 자신이 이처럼 당당한 태도를 지킬 수 있고, 말 한 마디 행동거지 하나가 엄청난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 ‘문화권력’임을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가요계의 판을 바꾼다거나 언더그라운드를 육성하여 제3의 문화진영을 만들 것이라는 등의 기대는 부담스럽다고 했다.
그는 “왜 내가 그런 일을 해야 하는가”라고 되묻기도 했다. 단 “일정수준 이상의 언더그라운드 진영에 길을 틔워줄 생각은 있다” 며 자신과 함께 무대에 설 수 있는 실력있는 그룹을 찾아 꾸준히 오디션을 보고 있다고 한다.
미국은 단지 작업의 편의를 위해 선택했을뿐, 그곳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할 자신은 지금으로서는 없다고 했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의 그 누구도 본토 수준의 음악을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방송에서 수백 팀의 하드코어 그룹이 출연하는 나라와 인터넷을 뒤져야 하드코어를 접할 수 있는 나라가 어떻게 경쟁이 가능한가.” 마찬가지로 ‘혁명가’ 나 ‘메시아’등 어마어마한 칭호에 대한 부담감도 내비쳤다.
“정말 본격적으로 사회를 바꿀 생각이었으면 운동권이 되었을 것이다. 학교에 대해 어두운 기억이 있고, 시민으로서 통일에 관심이 많아 남북정상회담이나 이산가족에 대한 신문기사를 열심히 읽는 정도다.”
인터뷰 중 그는 조성모나 H.O.T등 다른 가수들이나 자신이 ‘마니아’로 삼고 있는 아티스트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했다.
또한 사생활이나 주변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않을 권리’를 요구했다. 하지만 자신만만한 어조, 단호하고 당당한 태도 속에서도 서태지는 대중성과 음악성의 조화, 사회적인 바람과 자신의 선택 사이에서 끊임없이 절충을 고민하고 있는듯 했다.
/양은경기자 ke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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