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들의 ‘학문 편식’이 갈 수록 심각해지고 있다.일부 인기과목은 수백, 수천명의 수강생이 몰려 대학마다 ‘교통정리’에 진땀을 빼는 반면 기초·교양과목은 수강생이 없어 폐강하는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1996년 신입생을 계열군이나 단과대별로 뽑는 학부제가 도입된 이후 두드러지다가 최근에는 우려할 만한 수준으로 확대되고 있다.
■ 실태
최근 2학기 수강신청을 마감한 동국대의 경우 ‘광고학’과 ‘연극영상학부 촬영’ 등 인기과목은 800여명이 몰린 반면 ‘현대국가와 민주주의’ ‘현대사회와 동양의 전통사회’강좌는 정원 8명을 채우지 못해 폐강됐다.
경희대도 ‘한국근대사와 민족주의’가 정원 부족으로 폐강됐다.
숙명여대는 ‘일본문화연구’에 880여명, ‘광고와 사회’에 400여명이 몰린 반면 ‘문화와 정치’‘수학의 방법과 응용’은 30여명이 채 안돼 폐강됐다.
중앙대도 ‘현대사회와 영화’에는 2,500여명이 몰린 반면 물리, 화학 등 기초 자연과학 분야 강좌는 수강생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최근 조사한 ‘지방 B대 학생들의 교양과목 선택시 고려사항’을 보면 학생들은 과목에 대한 흥미와 학점 따기가 쉬운지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폭 넓은 교양지식의 이해’는 8개 항목중 4위로 밀려 교양과목 개설 취지를 무색케 했다.
2학년에 올라가면서 전공을 선택할 때도 편식현상은 그대로 이어진다. 한양대 인문학부의 경우 영문과에만 지원자가 몰리고 철학과, 사학과 등은 정원 미달이다.
이같은 현상은 동아리 활동에서도 나타난다. 한양대 노종희(盧宗熙) 교무처장은 “철학, 사상, 고전연구회 등은 지원자가 없어 점점 쇠퇴하고 있는 반면 영어회화, 컴퓨터, 게임 동아리 등은 지원자가 넘쳐 필기와 면접시험을 뚫어야 들어갈 수 있다”고 전했다.
■ 진단과 대책
대학 관계자들은 경쟁과 경제논리가 지배하는 사회 분위기가 대학에까지 만연돼 있다는 점과 성급하게 도입한 학부제의 부작용을 원인으로 꼽고 있다.
연세대 사회학과 유석춘(柳錫春)교수는 “학생들이 경영학 등 실용학문에 몰리고 학점에만 연연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며 “학생들은 혼란상황에 놓여 있으며 사회에 의한 희생자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교협 황인성(黃仁成) 연구원은 “기초학문 필수이수과목 수를 늘리는 등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김진업(金鎭業) 교수도 “지금과 같은 식으로 간다면 균형 잡힌 건강한 지성인 양성은 불가능해진다”고 지적했다.
한편 교육부는 어문학 철학 사학 등 일부 기초학문 분야에 대해서는 과별 모집을 일부 허용하고 교양과정을 강화하는 등 인문학발전종합계획을 내년부터 추진할 방침이어서 학문 편식 현상 해소에 다소나마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박석원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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