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차 처리 문제가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매각이 장기표류하면서 대우차의 부실은 갈수록 깊어지고 협력업체들이 심각한 자금난과 경영난을 겪으면서 우리 경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투자 여력이 없어 이미 단독 인수 불가 방침을 밝혔던 현대자동차는 정몽구 회장이 직접 독일로 날아가 제휴 파트너인 다임러를 인수전에 끌어들이려 했지만 실패했다.
다임러 슈렘프 회장과 만난 정 회장은 “대우차 문제는 말도 꺼내지 못했다”며 “아예 생각도 하지 않는 것 같더라”고 전했다.
현대차로서는 대주주인 다임러의 입장을 따라야 하는데다 기아차 인수로 여력이 없어 대우차 인수 의지는 일단 접은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그러나 대우차 폴란드 공장 등 해외 시설에 여전히 관심을 가지고 있고 정부의 입장도 감안해야 하는 만큼 “앞으로 두고보자”식의 묘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정 회장이 “대우차의 고용유지 등을 생각해야 하므로 포드처럼 완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 점은 정부가 조건을 바꿔 현대차에 ‘혜택’을 주는 등 상황이 바뀔 경우 대우차의 위탁경영을 수용할 의사가 있음을 시사한다.
현대-다임러의 포기로 대우차 입찰은 GM에 절대 유리한 ‘패자부활전’이 될 가능성이 커졌고, 이미 협상카드를 다 내보인 채권단으로서는 GM의 ‘가격 후려치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우려도 높아졌다. 정부와 채권단은 초조해 하는 반면 GM은 느긋하게 유리한 인수조건을 저울질하고 있다.
GM은 우선 대우차 인수 의지를 분명히 하면서도 채권단이 요구하는 선인수 후정산 방식이나 조기 인수제안서 접수에는 난색을 표명하고있다.
GM의 릭 외고너 사장은 “실사를 통해 정확한 상황을 파악한 이후에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정밀 실사후 인수가격 등 입찰제안서 제출 방침을 분명히 했다.
GM은 또 포드의 대우차 인수포기가 일부 부실 때문이라는 외신 보도에 주목하면서 우량 자산만을 겨냥한 ‘실사 후 분할인수’의사를 내비치고 있지만 다분히 인수가격 깎기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대우차 매각이 지연되면서 대우차는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고 협력업체들의 연쇄도산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포드의 인수 포기 이후 채권단의 신규자금 지원이 중단돼 대우차 직원들은 9월 상여금은 물론, 이달 25일 지급예정이던 월급조차 받지 못했고, 협력업체들은 어음할인이 안돼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 있다.
대우차 관계자는 “올 하반기 채권단이 지원키로한 자금 가운데 2,200억원이 들어오지 않고 있고 연말까지 지원키로 한 4,500억원도 불투명한 상태”라며 “자금지원이 안될 경우 생산차질도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김호섭기자
dream@hk.co.kr
■채권단은 현대자동차측이 공개적으로 “대우자동차 인수에 뜻이 없다”고 밝힌데 대해 상당히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협상 파트너 2곳 중 1곳이 탈락할 경우 협상력이 크게 저하되는 것은 물론 매각 자체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벼랑끝에 몰린 채권단으로서는 ‘선인수-후정산’, ‘10월20일까지 매각협상 완료’, ‘일괄 매각’ 등 당초 매각 원칙을 전면 철회할 수밖에 없는 처지. “살려는 사람이 없는데 공허한 매각 방침만 되뇌여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당장 내달초 1,000억원의 신규자금 지원을 놓고 채권 금융기관간 마찰이 불가피한데다 매각이 장기화할 경우 매월 1,500억원에 달하는 운영자금을 쏟아부어야 하는 것도 골칫거리다.
뚜렷한 복안이 없는 채권단으로서는 GM과의 단독 협상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채권단 고위관계자는 “GM측에만 입찰 제안서를 보낸다 하더라도 협상조건을 높이기 위해 다른 원매자들과도 계속 협상을 벌일 수 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하지만 금융계에서는GM과 단독 협상을 할 경우 입찰보증금 등 구속력 있는 계약을 할 수 없어 포드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채권단이 뚜렷한 협상 전략없이 이리저리 끌려다닐 경우 매각이 장기화하는 것은 물론 ‘헐값 매각’ 가능성도 크다”고 지적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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