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에 성공한 아버지가 세 아들을 두고 있었다. 로열티를 주고 도입한 기술을 발전시켜 좋은 제품을 만들어 잘 팔아 나갔다. 아버지는 이 기술에 대한 애착도 있고, 또 장래성도 보장되기 때문에 최소한 아들 중 한 사람은 자기 사업을 고스란히 계승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세 아들 모두 다른 기술을 새로 도입해서 더 큰 사업을 벌이겠다며 아무도 아버지의 뜻을 따르려 하지 않고 있다.■요즘 정보통신부가 이런 곤경에 빠진 아버지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3세대 이동통신인 IMT_2000 사업자로 거의 굳어진 SK 한국통신 LG등 세 기업 모두가 하나 같이 그동안 발전시켜온 기술인 ‘동기식’은 싫다며 ‘비동기식’을 기술표준으로 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세계적 수준이 된 기술을 사장(死藏)시키는 애석함도 있지만, 기술표준 전환에 따른 장비업체들이 겪을 혼란도 만만치 않게 됐다.
■IMT_2000은 전화와 인터넷이 융합되어 경제는 물론, 사회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미래전문가들은 점치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매체의 융합을 지향하는 발전적 측면과는 반대로 기술표준은 미국의 동기식과 유럽의 비동기식으로 나뉘어진채 치열한 기술표준 확보 전쟁을 벌이고 있다. 세계시장 판도로 보면 비동기식이 동기식을 두 배 정도 앞질러 있으나 미국이 국력을 바탕으로 무역협상등에서 거대시장인 중국에 동기식 표준채택 압력을 넣고 있다고 한다.
■정보통신 기술만은 세계적이라고 뽐내던 한국이 기술표준선택의 딜레마에 빠지게 된 것은 아이러니다. 정통부는 세계시장추세를 감안한 보험용으로 복수의 표준기술채택을 원했던 모양이다. 움직이는 세계시장과 급속한 기술발전을 생각할 때 정통부의 복수표준 선택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정책목표에 도달하도록 IMT_2000사업자 선정방식을 결정할 때부터 지혜로운 정책수단을 동원했어야 했다. 면피식 산업정책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걱정된다.
/김수종 논설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