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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선택코스일뿐"

입력
2000.09.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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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집들이, 출산과 돌잔치,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결혼과 가정의 주기에 따라 설계하고 살아간다.그러나 최근 이러한 삶의 방식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비혼(非婚)’그룹이다. 비혼은 오래 전부터 나타난 독신과는 좀 다른 개념이다.

독신이 외부나 타율적 요인에 의해서도 선택된 부분이 있다면, 비혼은 스스로 선택한 주체적 삶이라는 점이 강조된 신용어로 등장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바깥에 선 이단자, 부적응자라는 부정적 느낌보다 경제력을 갖추고 적극적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긍정적 요소가 부각된 것이다.

이들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결혼도 할 수 있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독신주의와 구별될 수도 있다. 최근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커버스토리로 다룬 미 시사주간지 타임은 이들을 ‘선택적 싱글(single by choice)’ 이라는 용어로 부르며 ‘자발성’을 강조했다.

통계청은 최근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30년 이래 최저라고 발표했다. 전통적 가족중심에서 개인중심 사회로의 변화를 리드하고 있는 비혼의 증가는 출산율 저하의 중요한 요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또 사회적으로는 새로운 여러가지 가족 형태의 출현을 예고하고 있다.

경제기획원이 펴낸 한국사회지표에 따르면 혼자 사는 가구는 1995년 전체 가구의 12.7%. 8가구 중 1 가구가 ‘나홀로 가구’다. 1965년 2.32%에서 1975년 4.23%, 1985년 6.91%로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이러한 현상은 선진국의 경우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

미국에서는 1인 가구의 비율이 1970년 19%에서 1982년 27%로 증가한 반면, 기혼가정의 비율은 71%에서 59%로 감소했다.

특히 주목되는 현상은 결혼에 대해 소극적인 여성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결혼적령기라고 할 수 있는 25~29세의 우리나라 여성 가운데 미혼은 1990년 22.1%에서 1995년 29%로 늘어났다. 혼자 사는 여성 가구주는 1995년 약 50만으로 전체 가구주 가운데 3.5%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비혼여성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건국대 강사 이인숙(정치외교학과)씨는 “결혼제도가 특히 여성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제도이기 때문” 이라고 설명한다.

여성의 경제활동이 증가하면서 혼자 살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추게 됐다는 것도 중요한 배경이 된다. 가족주의적인 가치척도가 개인의 행복과 선택을 중시하는 쪽으로 바뀐 점, 독신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사회여건의 형성 등도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성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도 빼놓을 수 없다. 예전에는 성욕구의 해소는 결혼이란 합법적인 장치를 통해서 이루어졌지만 이제는 온라인 등 커뮤니케이션의 발달로 남녀간 만남과 성접촉의 기회가 많아졌다. 이와는 반대로 성보다 스포츠와 여가를 더 즐기려는 ‘섹스리스(sexless)’현상도 비혼의 선택과 관계가 있다.

결혼은 더 이상 절대적인 삶의 방식이 아니게 됐지만, 아직까지 우리 사회의 구성원리는 가족주의에 머물러 있다. 호주제, 세금, 여가와 레저활동 등이 모두 가족 위주로 이루어지다 보니 비혼으로 살아가는 데 불리한 점도 많다.

여성학자 차옥경(건국대 강사)씨는 “특히 비혼여성인 경우 연말정산시 부양가족이 없기 때문에 세금공제 혜택을 받지 못하는데다 가족수당을 받을 수 없다. 남성 우선의 호주승계 원칙 때문에 남동생 호적에 올라있는 비혼여성도 많다”고 말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지난달 말 ‘비혼, 이혼, 사별 등으로 인해 혼자 사는 여성에 대한 자립지원 방안 토론회’를 열어 이들의 삶을 사회적으로, 제도적으로, 법적으로 돕기 위한 방안을 모색했다.

김동선기자

dongsunkim@hk.co.kr

■비혼남녀 사이트 '솔로베이' 회원들

“결혼한 친구들을 보면 사는 게 다 똑같아 보인다. 퇴근 후나 주말에 하는 일, 관심사, 집안 꾸며 놓은 것, 심지어 TV놓는 위치까지 똑같다. 결혼 후 나의 개성을 잃는 게 두렵게 느껴져 결혼을 미루고 있다.”(김모씨·36· 여·웹디자이너)

“영화, 음악, 스포츠 등 나의 취향과 맞지 않는 이성과 사는 것보다 혼자 사는 게 훨씬 재미있다.” (이모씨·30·웹PD )

결혼을 앞둔 예비 커플들이 혼수 상가를 기웃거리는 주말인 23일 저녁 7시 서울 강남역 근처에서 비혼 남녀 7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비혼남녀를 위한 인터넷사이트 ‘솔로베이’의 회원들이다.

30대 후반의 미혼여성, 이혼 후 홀로서기를 선언한 40대 남성 등 제각기 사정이 다른 이들은 결혼하지 않은 이유도 다양했다. 박모씨(35·여·회사원)는 “결혼은 여성에게 불리한 제도인 것 같다.

여자가 더 많이 양보하지 않으면 유지가 힘들어지는 결혼생활을 굳이 감당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혼기를 놓쳐서”라든가 “마땅한 배우자를 만나지 못해서”와 같이 궁색한 변명은 없다.

토요일 오후면 영화, 공연 감상이나 롤러브레이드, 낚시 등 각자 동호회 활동을 한 뒤 저녁에 모여 뒷풀이를 한다. ‘집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모임은 흔히 새벽까지 이어진다.

예전에는 주말에 함께 시간 보낼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혼자 사는 사람들의 가장 큰 어려움인 ‘외로움’을 해결한 것이 바로 인터넷이다. 아무 때라도 온라인을 통해 의사소통을 원하는 누군가를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솔로베이’의 운영자 이승옥(37·여·은행원)씨는 “그런 점에서 비혼과 인터넷은 찰떡궁합”이라고 말한다. 홈페이지 ‘독신자의 방’을 운영하던 이씨가 비혼끼리 정보 교환을 목적으로 5월 사이트를 개설한 이래 회원이 수천명으로 늘어났다.

거리낄 것이 없는 이들이지만 고충도 적지 않다. 비혼을 ‘뭔가 모자란 사람으로 취급하는 사회적 인식’이 그들을 힘들게 한다.

“혼자서 여행을 하거나 식당에 들어갔을 때 사람들이 신기한 듯 쳐다보는 시선이 힘들다.”(김모씨) “혼자 산다고 하면 남들이 쉽게 접근하려 한다.”(박모씨)

그러나 외아들이라는 한 남자 회원은 “부모를 생각하면 언제까지 혼자 살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부모 부양과 제사 의무를 진 남자는 혼자 살기가 어려운 것 같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밖에 동료의 결혼식장에 가서 축의금을 낼 때, 연말 세금정산을 할 때 등 혼자 살기 때문에 손해 보는 일도 많다. 특히 자신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이들에게는 아플 때와 늙었을 때의 일도 걱정이다.

이 때문에 ‘솔로베이’는 지역별로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SOS전용방’을 운영하고 있다.

김동선기자

■비혼족 여성 세명중 한명 "결혼은 No, 아이는 Yes"

“결혼은 하지 않더라도 자녀는 갖고 싶다.”

건국대 강사 이인숙씨가 비혼 여성 15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최근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의외인 결과가 나와 있다. 세 명 중 한 명꼴인 38.6%가 결혼은 않더라도 아이는 키우고 싶다고 대답한 것이다.

이중 18.4%는 아이를 낳고 싶다, 12.9%는 입양하겠다(나머지는 기타)는 의견이었다. 이들이 결혼은 거부하지만 자녀 갖기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것은 ‘모성’ 본능뿐 아니라 노후에 대한 불안감도 작용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비혼여성의 자녀 갖기 욕구는 서구에서는 이미 ‘모자 가족’과 같은 형태로 실현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1991년 18세 미만의 자녀를 둔 가족 가운데 편모 가족이 20%를 차지하고 있으며 프랑스, 영국의 경우 3명 중 1명의 아기가 독신 부모에게서 태어나고 있다.

물론 이러한 경우는 자녀양육에 대한 사회적 지원 시스템이 전무한 우리나라에서 가까운 장래에 나타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오히려 비혼의 확산은 출산율의 저하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27일 발표된 통계청 인구동태 결과에 따르면 99년 국내 출산율(여성 한 명이 가임기간 중 낳는 출생아수) 은 1.42%. 미국의 2.06%(98년), 프랑스의 1.75%(98년)보다 낮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제도적으로 가족지원은 허약하다는 점에서 우리와 비슷한 일본의 경우, 출산율이 우리 보다 낮은 1.38%(98년)이다. 95년 일본 후생성 통계에 따르면 25~29세 여성 가운데 절반이 미혼상태이다.

■나의 비혼가능 지수는?

결혼이라는 제도에 의해 자유를 속박당하기 싫어 선택한 ‘비혼’. 하지만 비혼주의자로서 살아가기에 우리 사회는 그리 만만치 않다.

자유스럽게 당당하게 그리고 즐겁게 ‘비혼’의 삶을 즐기려면? 다음 항목 가운데서 8개 이상이 자신의 생활과 일치한다면, 비혼으로서 당당하게 살아나갈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한다. 건국대 강사 이인숙씨의 논문(2000년) ‘혼자 사는 여성의 자립지원 방안 마련을 위한 실태조사‘중에서 인용한다.

①모든 일을 스스로 결정하고 판단하는 일이 많다.

②어느날 갑자기 혼자가 되어도 잘 살아나갈 자신이 있다.

③‘남과 다르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다.

④스스로를 능력 있고 상당히 소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⑤즐길 수 있는 취미가 다양하다.

⑥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당당한 편이다.

⑦독립자금이 있고 금전적으로 부모님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

⑧안정된 직업과 내가 좋아하는 할 일들이 있다.

⑨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있다.

⑩운동과 건강검진 등 자신의 건강관리를 할 수 있다.

⑪밥짓기나 빨래하기 등 가사일을 할 줄 안다.

⑫혼자서 음식점, 영화관에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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