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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에 울러퍼진 통일 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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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에 울러퍼진 통일 염원

입력
2000.09.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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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관광단 동행기(上)북한쪽에서 오른 백두산 둔덕은 노란색 바다였다. 거대한 평원에 이깔나무가 촘촘히 들어서 있다. 봉우리들은 벌써 머리에 하얀 눈을 얹은 채 이깔나무 평원을 방석처럼 깔고 앉아 있었다.

이깔나무는 침엽수이지만 가을이면 잎을 가는(입갈→이깔) 나무. 낙엽송의 일종이다. 나무가 단단하고 곧아 목재 중 으뜸으로 친다. 일제시대 이 백두평원은 목재 수탈의 근거지가 됐다.

23일 양강도 삼지연읍 인근의 소백수 초대소를 출발한 차는 이깔나무 사이로 난 길을 달렸다. 평탄한 직선도로. 노면은 좋지 않았다. 겨울에 눈에 덮여 꽁꽁 얼었던 길이 봄을 맞아 풀리기를 반복하는데다 여전히 백두산 자락의 땅덩어리가 조금씩 움직이기 때문이다.

40분을 덜컹거렸을까. 갑자기 시야가 터졌다. 해발 2,200㎙를 넘어서면서 모든 나무는 사라졌다. 누런 잡초만 바람에 흔들리는 민둥 구릉이 펼쳐지고 길은 구릉을 타고 뱀처럼 구불거리며 올라갔다.

골짜기에 내린 눈이 덜 녹아 산 전체는 얼룩말 모양이었다. 맨땅을 오르기를 30분. 차는 멈췄다. 천지가 내려다 보이는 연봉 정상에 오른 것이다.

북측에서 이야기하는 백두산 최고봉 장군봉의 높이는 2,750㎙.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웠던 2,744㎙보다 6㎙가 높다. 북측에서는 매년 백두산의 높이를 재는데 매년 조금씩 높이가 달라진다고 한다.

장군봉 정상에 섰다. 순간 골짜기를 메우던 안개가 걷히며 천지가 한 눈에 들어왔다. 성난 짐승의 이빨처럼 삐죽삐죽 솟은 백두연봉 사이로 시퍼렇다 못해 시커먼 물이 담겨있다. 이곳 저곳에서 탄성이 터진다. 만세 소리도 들린다.

중국 쪽은 몽땅 절벽이어서 천지에 못 내려가지만 북한 쪽에서는 가능하다. 가파른 돌길을 걸어 내려가면 잠실운동장 서너 배 만한 평지가 있다. 말을 달려도 좋을 정도이다.

평지와 정상을 잇는 삭도가 있다. 삭도의 길이는 1,700여㎙. 한번에 4인승 캡슐(북에서는 바가지라고 표현) 5개씩, 모두 10개의 캡슐이 오르고 내린다.

초속 4㎙로 편도에 7분이 걸린다. 관광객과 안내원 일행이 모두 천지로 내려가는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긴 쇠줄에 달랑 10개만을 달아놓았을까.

백두산과 천지 사이는 연평균 274일간 태풍(초속 15㎙ 이상)이 부는 곳. 격납고에 들어있는 캡슐은 안전하지만 중간에 노출돼 있는 캡슐은 날아가 버린다.

천지의 물은 맑고 고요했다. 그러나 바람이 심하면 바다의 파도를 연상케하는 물결이 인다. 천지의 둘레는 14.4㎞, 평균 깊이는 213.3㎙, 가장 깊은 곳은 384㎙에 이른다.

예전에는 아무 물고기도 살지 않았다. 천지에서 떨어지는 폭포가 워낙 거칠고 높아 물고기가 뛰어오를 수가 없다. 그런데 요즘은 산천어가 산다. 1984년 두만강에서 100마리의 산천어를 잡아다가 넣었다.

열흘마다 3분의 1씩 천지 물의 비율을 높이며 적응기간을 거쳤다. 지금은 수만 마리로 불었다. 국가적으로 철저히 보호한다. 관광객들은 이날 점심으로 천지에서 산천어 어죽을 먹었는데, 실은 이 곳의 산천어가 아니었다.

날이 흐려 백두연봉을 뚜렷하게 보지는 못했지만 구수한 어죽에 들쭉술 몇 잔을 걸친 나이 든 관광객들은 기쁨과 흥에 겨웠다.

관광단을 인솔하던 북측 여성 안내 강사들도 할아버지 뻘 되는 이들의 흥을 맞받아쳤다. 어느 새 천지에는 관광객과 북측 안내원이 하나가 되어 부르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메아리쳤다.

사진설명:

천지에서 함께 어우러진 남측 관광단과 북측 안내원들. 이들이 부르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백두산에 메아리쳤다.

백두산(양강도 삼지연군)=권오현기자

koh@hk.co.kr

■백두산 관광단 취재기

남북관광의 물꼬를 트기 위해 마련된 남북교차관광의 남측 백두산관광단 109명이 22일부터 6박7일간 백두산, 묘향산, 평양 관광을 마치고 28일 서울로 돌아왔다.

방문단은 26일까지 백두산의 관문인 양강도 삼지연군의 소백수 초대소에 머물며 백두산 정상과 천지, 리명수폭포, 보천보 등 명소를 돌아봤으며, 27일 묘향산으로 이동해 짧은 산행을 마친 후 향산호텔에 투숙했다.

28일에는 평양 시내를 관광하고 만경대학생소년궁전에서 소년예술단의 공연을 보았다.

관광단은 관광업계 대표 30여 명과 학계, 문화계, 체육 및 청소년계 대표와 문화관광위 소속 남경필(한나라당), 최용규(민주당), 정진석(자민련) 의원이 포함됐다.

이번 관광은 북측의 달라진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시종 자유롭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으며, 북측은 참가자의 생일까지 일일이 챙기는 등 세심한 배려를 했다.

한때 우리측 의원단이 북측의 일방적인 관광코스와 일정에 항의, 이틀간 관광을 거부하고 남경필 의원이 보천보 관광 도중 "대한민국 만세"를 외쳐 문제가 됐지만 각각의 해명과 사과로 곧 갈등을 풀었다.

북측의 한라산관광단은 10월 중순 이후에나 남측에 올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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