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막바지에 이른 시드니 올림픽을 보면서 자신의 게으른 생활을 되돌아 보게 된다. 특히 건각으로 트랙을 질주하는 육상선수들의 힘찬 모습을 볼 때면 순위에 관계없이 감탄과 일종의 경이마저 느끼곤 한다.그들이 새벽 공기를 가르며 몸과 정신을 단련시킬 때, 우리는 새벽잠의 달콤함에 취해 있지는 않았는지.
'나는 달린다'(궁리 발행)는 현직 독일 외무장관이자 슈뢰더 내각의 부수상인 요쉬카 피셔(52)의 '달리기 예찬론'이다.
여기서 저자가 독일 최고의 인기장관이라는 것과, 예찬의 대상이 살빼기를 위한 달리기라는 것은 어쩌면 중요하지 않다.
그가 112㎏이라는 몸무게를 1년여만에 75㎏ 으로 줄였다는 사실도 한갓 호기심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그가 달리기를 통해 잃어버렸던 인생의 소중한 의미를 되찾고 인생을 다시 설계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우리에겐 더욱 소중하다. 요쉬카 피셔는 1996년 여름 처음으로 자신의 인생에 대해 회의하기 시작했다. 세번째 부인과의 이혼 직후 거울 앞에 선 그는 48세의 나이에 배가 동그랗게 나온 몸무게 112㎏의 뚱보에 불과했다.
당시 독일 녹색당 연방의회 원내의장이었던 그는 오로지 먹을 것과 잠자는 것만을 탐하며 살아온 지난 10여년의 세월을 되돌아봤다.
피곤하기 때문에 틈만 나면 먹고 마시고 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는 수많은 자기변명들….
그는 이와 동시에 택시기사에서 직업혁명가로, 다시 녹색당원으로, 그러면서 아마추어 축구선수로 활동하던 젊은 시절의 날씬하고 건강한 삶이 그리워졌다. 그는 결심했다.
이런 식으로 살다가는 결국 파멸하리라는 것, 이를 막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젊은 시절의 이상적인 체형으로 되돌아가려는 험난한 여정은 시작됐다.
이후 책이 자세히 적고 있는 달리기 훈련과정과, 이와 병행한 식생활 습관의 변화는 사뭇 감동적이다.
처음에는 얼마간 달리지도 못하고 주저앉아야 했던 그가 나중에는 단조로운 발걸음 속에서 무념무상의 경지에까지 오르는 과정은 스님들의 선(禪)수행이나 다름 없었다.
그는 결국 1998년 4월 19일 함부르크 마라톤대회에서 처음으로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 3시간 56분 13초의 기록으로 완주하는데 성공했다. 그 때 몸무게는 젊은 시절의 75㎏ 으로 변해 있었다.
저자는 '자기 개혁'을 위한 달리기를 시작했을 무렵의 착잡한 심정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나는 지난 세월 거의 모든 에너지를 정치적 성공을 위해 바쳐왔다.
너무 일에만 집중한 나머지 자아와 육체에 대해 소홀했다. 달리기는 이런 생활의 우선순위를 바로 자신을 위한 것으로 바꾸는 작업이었다."
그리고 1년여만에 예전의 자신을 되찾았을 때의 기쁨도 적었다. 독일의 거의 모든 신문이 그의 체중감량의 구체적 수치를 감동적으로 보도한 뒤였다.
"갑자기 매일 자신만을 위한 시간이 생겨났다. 항상 해야 할 일과 나의 업무 효율성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이제는 일들이 내 생활리듬 속에 너무나 잘 통합됐다.
나는 달리면서 진정한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라인 강변에서 만난 어떤 마라토너는 내게 이렇게 말을 걸었다.
'당신은 달리기를 하면서 자신의 부처를 만난 적이 있습니까?'라고."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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