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소설가 마거릿 드래블-최영 교수 대담2000 서울국제문화포럼 참석차 한국에 온 영국의 세계적인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마거릿 드래블이 최 영 이화여대 영문과 교수와 27일 본사에서 대담을 가졌다.
그간 13권의 소설과 4편의 희곡을 발표한 드래블은 지식인 여성과 그 가족 문제 등에 천착함으로써 세계 문학계에서 '페미니즘 작가'로 명성을 쌓아 왔다.
최 영: '더 밀스톤(The Millstone)' '더 워터폴(The Waterfall)' 등 대표 작품이 일본에서는 다섯권 정도 번역돼 소개됐는데 아쉽게도 국내에는 소설이 한 권도 번역되지 않았다. 한국 독자들에게 출생부터 작가 입문 계기 등을 알려 달라.
드래블: 2차대전이 발발하기 직전인 1939년 영국 셰필드에서 2남2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판사, 어머니는 영어교사 였다. 부모는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 자수성가 했다. 나는 케임브리지대에서 영문학을 했고,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에서 2년간 활동했다. 최 영: 배우 활동 중 드레스룸에서 소설을 써 1963년 '어 서머 버드 캐이지(A Summer Bird_Cage)'를 발표하게 됐다고 들었다. 배우를 계속 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매우 역동적인 직업이 배우 아닌가.
드래블: 아이들 때문이다. 아이들이 생기면서 배우를 계속하기는 어려웠다.
최 영: 1965년에 발표한 '더 밀스톤' 은 자의로 미혼모가 된 옥스퍼드대 출신의 여성이 겪는 갈등을 그렸다. 직업을 가진 여성은 아이의 양육 문제 때문에 감정의 혼란을 겪다 결국 모성을 통해 성숙한 내면을 갖게 되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당신의 소설은 대학을 나온 지식인 여성의 갈등을 많이 그렸다. 그러나 일부 평단에서는 당신의 소설이 지나치게 가족적 범주 머물러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한다.
드래블: 어떤 이들은 나를 '페미니스트'라고도 부른다. 1960년대는 미국에서 페미니스트 운동이 일어날 때였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조직이 결성되거나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러나 첫 소설이 발표되면서 "일이냐, 가정이냐" 는 문제를 두고 고민하던 영국 여성들 사이에선 반향이 크게 일어났다. 비로소 60년 중반에 이르러 여성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70년대 중반에 이르러 여성문학이 나오기 시작한 것으로 기억된다. 여성을 고민하게 만들던 문제를 드러낸 것이 나의 작품이다.
최 영: 당신은 여성 문제 뿐 아니라 지식인의 사회적 책임, 그러니까 교육을 많이 받은 혜택 받은 사람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제' 를 많이 강조해왔다. 사회적인 약자에게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페미니즘적 성향과는 어떤 관련이 있는가.
드래블: 사실 작금의 페미니즘 운동은 여성의 권익이라는 다소 제한된 측면에 집중되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사회적 책임은 그보다 훨씬 더 범위가 넓으며 우위에 있다고 단언할 수 있다. 비교적 개발이 덜 된 제3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 같은 것, 그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것은 영국 지성인들이 갖는 일련의 사회주의적 전통과도 깊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최 영: 캄보디아 난민에 대한 관심도 각별한 것으로 안다. 1991년 '상아의 문(The Gate Of Ivory)'에서도 캄보디아 문제를 다루었다.
드래블: 국제 PEN 클럽 활동을 하는 남편을 통해 구속된 작가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캄보디아의 폴포트 정권은 가장 비밀스럽게 정권을 유지해왔었다. 80년대 후반부터 캄보디아를 방문하려 했었다. 그러나 결국 비자를 내주지 않아 베트남 국경 근처의 난민 수용소에서 그들을 볼 수 있었다. 지뢰를 밟아 다리가 잘려 나간 사람들이 처참하게 수용돼 있었다.
최 영: 북한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는가.
드래블: 북한에 대해선 오히려 작가 부르디외가 많이 알고 있다. 북한에 대한 소식은 신문을 통해 보는 것 외에는 별로 없다. 그러나 신문이 정확한 것은 아니어서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을 갖고 떠드는 것은 옳지 않은 태도라고 생각한다.
최 영: 최근 한국에서는 여성들이 사소설이 큰 인기다. 그런 작가들은 대사회적 의식이나 책임감은 등한히 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당신 소설은 여성의 개인적인 삶을 다루면서도 그런 위험에는 빠지지 않았다.
드래블: 그건 경향은 영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 소설의 영향 탓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젊은 여성들의 소설이 그런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자극적인 영화와도 비슷하다. 좀 더 자극적인 것, 좀 더 관능적인 것, 이렇게 흐르다 보면 과연 어떻게 될까. 나는 독자에게 아부하는 소설이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글을 쓴다. 그것이 베스트셀러의 비결이다.
최 영: 영화 얘기를 해보자. 문학 소년이 모두 영화 소년이 됐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영상문화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
드래블: 침실에 인터넷이나 TV를 끌고 갈 수는 없다,. 신문이나 책을 읽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TV가 나오면서 영화가 죽을 것이라고 했지만 오히려 상황은 거꾸로였다.
최 영: 인터넷 글쓰기가 보편화하면서 문학에도 적잖은 영향을 던지고 있다. '하이퍼 텍스트'가 그 좋은 예이다. 인터넷을 통해 유통되면서 원전이 모호해지는 이 방식에 대한 입장은 어떤가.
드래블: 하이퍼 텍스트는 문학가들이 한 번쯤 고민해야 할 하나의 트렌드 임에는 틀림없다. 새 문명이 만들어 낸 재미있는 현상이다. 누가 알까. 언젠가 하이퍼 텍스트 방식을 통한 위대한 문학작품이 나올지. 하지만 그건 내 몫은 아닌 것 같다.
최 영: 우리나라 일부에선 영어를 공용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탈식민주의적 언어와 문학에 대해 관심이 많은 당신의 입장에서 보면 어떤가.
드래블: 영국의 웨일스는 전통이 강하며 언어는 영국식 영어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그렇다고 웨일스가 그들의 언어를 버리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유아원부터 아이들은 웨일스어와 영어를 동시에 배운다. 문학작품, 신문, 방송 모두 고유 영역을 지키고 있다. 누누이 강조해왔듯 한 언어가 지구촌을 지배하는 지배 언어가 된다는 것은 비극적인 일이다. 각 나라의 '언어적 개성'을 말살하는 행위를 소수 언어 국가가 자발적으로 추진하는 일을 이해할 수 없다.
최 영: 요즘 영국 작가들의 쟁점은 무엇인가.
드래블: 정부가 순수문화와 연구에 대한 지원을 점차 줄여가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의 브레인들이 속속 미국으로 빠져 나가고 있다. 블레어 총리 취임식에 초청되어 보니 인문학을 하는 사람이라곤 나와 남편이 전부였다. 대중문화에 대한 지원이 집중되면서 작가들 사이에선 고민이 많다. 최 영: 인문학의 위기 역시 전세계적인 '트렌드' 가 된 것 같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가. 2001년 1월 새 소설이 나온다고 들었는데.
드래블: 제목은 '더 페퍼드 모스(The Peppered Moth)'이고 어머니에 대한 소설이다. 나의 딸은 "모든 자매에겐 각기 다른 어머니가 있을 뿐"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같은 가정에서 자랐어도 어머니에 대한 인식은 다르다. 나는 소설가인 언니 A.S. 바이야트의 어머니가 아닌 나의 어머니의 인생에 대해 기술하려 한다.
최 영: 오랜 시간 즐거웠다. 작업의 정진을 빌겠다.
정리=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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