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계의 라틴 바람은 사실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80년대부터 '라틴풍 댄스곡'은 여름 한철 가요시장을 바짝 달구었다.올해의 라틴 열풍은 유난히 거셀 뿐 아니라 계절을 타지 않을 태세다. 백지영이 'Sad Salsa' 에서 화려한 라틴 스타일의 비주얼과 선정적인 춤으로 돌풍을 일으킨 데 이어 홍경민의 '흔들린 우정' 역시 가요차트 정상을 차지하며 그에게 '한국의 리키마틴' 이라는 별칭까지 붙여 주었다.
제목까지 스페인어로 들고 나온 이혜영의 '라 돌체 비타(La Dolce Vita)' 역시 만만찮은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클레오의 '모순', 비쥬의 '쌍띠망', 티니의 '뭐야' 뿐 아니라 통일소녀의 '휘파람'도 라틴 버전으로 나왔다.
게다가 조성모도 '아시나요'의 후속곡으로 라틴풍의 하우스뮤직 '다짐' 을 내놓는 등, 이제 '라틴' 은 댄스나 발라드 등 장르를 막론하고 새 음반에서 한번쯤 써 보는 보편적인 코드가 됐다.
이처럼 너도 나도 '라틴' 을 들고 나오지만 라틴 음악을 본격적으로 하는 가수는 찾기 힘들다.
게다가 대부분 그럴듯한 비주얼과 분위기만을 차용하는 '라틴풍'이어서 가요계의 라틴 열풍은 그야말로 '바람'에 그칠 가능성도 크다.
/ 양은경기자 key@ hk.co.kr
■기진맥진한 우리 팝시장에 제3세계 음반이 새로운 다크 호스로 등장하고 있다.
90년대 이후 가요 시장이 커지고 팝시장이 급속히 위축되면서 음반사들은 인기곡을 모은 편집모음(컴필레이션)음반으로 명맥을 유지했다.
그러나 편집음반이 난립하면서 근래 이 시장도 크게 둔화했다.
최근 바람직한 음반 시장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영어권 음악에 치중됐던 팝시장에서 남미, 유럽 음반 등 다양한 국적의 음악에 대한 관심이 나타나고 있다.
당초 이 변화는 리키 마틴, 제니퍼 로페즈, 엔리케 이글레시아스 등 스타성 강한 가수를 소니뮤직이 '달러 파워'로 조성한 것이었다.
최근 다양한 남미 아티스트들의 음악이 한국팬의 사랑을 받고 있다. 루 베가의 '맘보 넘버 5', 마크 앤서니의 '아이 니드 투 노우'등 영어로 부른 라틴 선율이 인기를 끈 이후 이들이 자국어로 부른 후속곡들까지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마크 앤서니의 '디멜로', 메르세데스 소사의 '프래길리다드', 리키 마틴의 '부엘베' '벨라' 등이 인기가 높다.
미국식 라틴팝을 갖고 나온 가수들만 선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쿠바의 인간문화재급 아티스트의 노래가 들어있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은 발매 직후 열광적인 반응을 끌어내고 있으며,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작은 나라 카보베르즈의 가수 '세자리아 에보라'의 음반도 인기다.
세자르는 우리에겐 낯설지만 마돈나, 스팅 등 미국 아티스트들이 존경하는 열정적인 라틴 가수다.
라틴 가수만 뜨는 것이 아니다. 최근 포르투갈 파두의 대표 선수인 '마드리 쥬시'의 베스트 앨범이 출시됐고, 지난해 국내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던 신세대 파두 가수 베빈다의 새 음반도 출시됐다.
비영어권 가수들의 음반이 꾸준히 출시되는 것은 이젠 수요층이 어느 정도 형성됐다는 판단 때문이다. 국내 마니아 음반사들이 이 유행의 선봉에 서 있다.
KBS 제2 FM '김현철의 뮤직 플러스' 등 서너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도 라틴, 남부 유럽 등 비영어권 음악을 소개하는 고정 코너를 마련하고 있다.
라틴 음악을 필두로 한 제3세계 음악은 당분간 미국에서도 그 기세가 꺽이지 않을 전망이다. 빌보드 근착호에 따르면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로스 로보스, 루이스 미겔 등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라틴 뮤지션들이 속속 음반을 내놓으면서 라틴 음악의 열기를 상당 기간 가속화할 것으로 점쳐진다.
음악평론가 송기철씨는 "미국이 호황기일 때 밝고 가벼운 라틴 음악이 유행해 왔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특히 라틴음악은 한국인의 감성에 호소하는 정(靜)과 동(動)의 매력을 모두 갖춘 음악으로 아이돌 중심의 팝음악에 진력이 난 20대 후반~30대 팝팬이 새로운 사운드와 언어에 주목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다양한 국적에 대한 이해는 결국 다문화에 대한 이해로 귀결된다. 때문에 팝평론가들은 제3세계 음악의 진출을 반기고 있다.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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