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게 행복한 가정이다. 남편 노먼 (해리슨 포드)은 세계 최고의 유전학자이고 아내 클레어 (미셸 파이퍼) 는 한때 첼로 연주자였으나 남편과 딸을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했다.호숫가에 자리잡은 집은 평화롭기만 하다. 딸을 대학 기숙사로 보내는 날 아침에도 남편은 아내에게 섹스를 요구할 만큼 부부의 애정도 식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 이 미국 중산층은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카페트를 걷어내듯 한 꺼풀을 벗기면 '그 아래에는 감춰진 것 (What Lies Beneath)' 은 바로 끔찍한 음모와 인간의 사악함과 위선이다.
클레어가 그것을 밝혀 나가는 동안 영화는 반전과 복선을 교차한다. 솜씨가 빈틈없고 매끄럽다. 그래서 오히려 할리우드 스릴러의 관습에 너무나 충실했다는 느낌을 준다. '포레스트 검프' 의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왓 라이즈 비니스' 는 다분히 히치콕 스타일이다. 초반 관객을 긴장으로 이끄는 여러 개의 복선을 깔아놓은 것이나, 그것들을 하나하나 사건과 연결시키며 스릴러적 맛을 내는 방식이 닮았다.
사건의 전개에 중요한 장치인 심리적 기재들도 어김없이 열거한다. 알고 보니 클레어는 딸을 가진 이혼녀로 노먼과는 재혼이다.
몇 년전 사망한 노먼의 아버지는 '스펜서의 정리' 를 발표한 유명한 수학자였다. 1년전 클레어는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
그러나 저메키스 감독은 '싸이코' 를 다시 만든 구스 반 산트 처럼 히치콕에 대한 오마쥬(숭배) 에 빠지지 않았다. 그는 히치콕을 존경하면서도 그를 살짝 비켜간다.
그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집어 넣으면서 영화는 감독의 말처럼 "현대적 감각의 공포영화" 가 된다. 딸이 없는 클레어 혼자 지키는 한적한 집을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현관문이 저절로 열리는가 하면, 컴퓨터가 저절로 켜지고 이상한 암호 같은 것을 토해낸다. 부부가 참가한 유명한 학회 모임을 찍은 사진이 든 액자가 탁자에서 떨어진다. 옆집에 이사 온 심리학자 부부의 행동도 이상하다.
이때까지만 해도 관객은 반신반의한다. 클레어가 호수에, 욕조의 담긴 물에 여자의 시체가 비치는 것을 봤다고 해도 1년전 교통사고를 언급하며 그의 환청과 환상을 정신병적 징후로 걱정하는 노마의 생각을 무시하지 못한다.
그러나 깨어진 사진 액자 뒤에서 노마가 가르치던 한 여대생의 실종기사가 나타나면서 클레어가 말하는 유령의 존재는 감지된다. 그 유령은 악령이 아니다.
'식스센스' 에서 이미 시작한 인간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원하고, 그것을 통해 진실을 알리려는 동양적 귀신이다.
그의 암시를 따라, 두려움을 가지면서도 집요하게 진실을 파헤치는 클레어를 따라가다 보면 잡히는 것이 있다.
꼼꼼한 관객이라면 진실이 무엇인지, 결말이 어떤지 실종된 여대생의 의 존재가 설정되는 순간 눈치챌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눈을 뗄 수 없다. 오락성을 위해 마지막 반전에 끌어들인 느닷없는 액션이 그럴 듯해서도, 유령의 존재가 가진 공포 때문도 아니다.
마지막 다분히 상업성을 의식해 끌어들인 액션이 오히려 어색하다.
연약하면서도 강하고, 때론 요염하면서도 냉정한 미셸 파이퍼가 진실을 위해 집착하는 '영혼과의 대화' 로부터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30일 개봉. 오락성 ★★★☆ 예술성★★★ (★ 5개 만점 ☆는 절반, 한국일보 문화부 평가)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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