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의 문제는 한마디로 불평등의 문제이다. 세계화는 지난 10여년 간 성장과 발전을 지속시켜 온 동인으로, 원리로 자리잡았지만 그 혜택이 한 부분으로 집중되는 현상에 대한 반성과 시정요구가 반세계화의 목소리에 담겨 있다. 불평등이 새삼스럽게 문제시되는 것은 세계화의 진행이 초래하는 그 정도가 갈수록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과 개도국, 부유층과 빈곤층 사이에 가속화하는 격차를 두고 위기의식이 거론되고 있고, 차츰 공유의 폭도 생겨가고 있다.반세계화의 주요 타깃 중 하나인 세계은행 역시 이런 위기의식을 놓치지 않는다. “오늘날 세계는 20%가 세계 국내총생산의 80%를 지배한다. 세계 경제규모가 30조 달러이지만 그 중 24조 달러가 선진국에 집중돼 있다. 그 격차는 지난 10년 간 배가돼 왔다. 이런 불균형이 지속될 리가 없다. 구조적 변혁을 찾으려면 사회붕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야만 할 것이다.” 소위 ‘20/80론’을 빌린 과격한 표현이지만 바로 제임스 울펜손 총재가 한 말이다.
그러나 세계은행은 여전히 국제통화기금(IMF)과 함께 세계적 불평등과 불균형을 초래한 주범으로, 세계화의 전위세력으로 반세계화 시위대의 집중 표적이다. 지금 IMF·세계은행 연차총회가 열리는 체코 프라하에서는 “IMF 폐쇄”라는 구호가 등장하고 있다.
‘IMF해악론’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논란이다. 1997년 한국의 경제위기에 투입됐던 IMF처방은 이 논란의 주요 사례로 지금도 거론되는 중이다. 그러나 가장 실증적인 한 통계자료가 이달 초 공개되면서 IMF귀책론은 더욱 득세하고 있다. 워싱턴에 본부를 둔 세계빈곤퇴치 민간운동기구 옥스팸(Oxfam)은 IMF의 내부자료를 입수, 개도국에 대한 IMF의 대규모 자금지원이 국가경제나 생활향상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으며 오히려 부채의 덫으로 국가를 파탄상태로 몰고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로 든 잠비아의 경우 지난해 1억3,600만 달러에 달하던 차관이자는 2002년 2억3,500만 달러로 폭증하게 돼 있고 이로 인해 정부는 교육이나 의료복지 등 당초 목표로 했던 공공지출은 엄두도 못내고 있다. 이는 빈국에 대한 IMF의 지원프로그램이 채권측의 배만 불린 대표적 결과이고, 따라서 과도채무국에 대해 전면적이고 즉각적인 부채탕감이 있어야 한다는 게 옥스팸의 결론이다.
개도국 부채탕감은 지난 해에 이어 7월 오키나와 G7정상회의에서도 합의를 이루고도 채권 선진국들의 까다로운 이행조건과 무성의로 의미있는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잠비아의 사정은 IMF가 제시한 부채탕감 계획을 적용하고도 예측되는 결과이다. 이번 IMF총회는 이 문제를 선결과제중 하나로 다루고 있다.
IMF폐쇄론은 공격적 표현에 머무는 구호만은 아니다. 채권, 채무자 간의 국제중개 기관으로서 IMF의 역할이 양측 모두에게 이득을 주지 못했다는 이론들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한국을 포함, 1990년대 여러 지역의 경제 통화위기 수습과정에서 IMF식 처방은 채권 채무의 정상적인 관계를 왜곡시켰고, 차관이행조건이 채무국의 사정을 더 악화시켰으며, 세계적으로 모럴 해저드를 유발했다는 비판론들이다.
IMF에 대한 공격은 세계화에 수반되는 피할 수 없는 도전을 보여준다. 세계화가 자유시장의 풍요를 가져다 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늘어가는 부정적 퇴적물을 심각하게 봐야 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세계화가 ‘지속가능’한 경제·정치원리로 계속 작동되려면 이제 ‘관리’가 필요하다는 경고로 들을 만하다.
조재용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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