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오랜만에 한국기원이 북적거렸다. 올 하반기 승단 대회 제3국이 열렸기 때문이다. 프로기사들은 평소 대국이 없으면 기원에 잘 나오지 않기 때문에 한동안 만나지 못한 기사들과 안부나 나눌까 해서 대국장에 들렀는데 뜻밖에 낯익은 얼굴들이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알고 보니 고참기사들 가운데 상당수가 승단대회에 참가하지 않았다.
프로기사로서 타이틀 따고 상금 많이 버는 것 못지 않게 단위가 높아지는 것도 중요할텐데 웬일일까? 의아해서 참가자 명단을 살펴 보니 정말 초단부터 8단까지 한국기원 소속기사 145명 가운데(승단대회에 9단은 참가치 않음) 대회 참가자는 114명 뿐이었다.
전체의 20% 이상이 이런 저런 이유로 대회를 보이콧한 것이다. 엄청난 숫자다.
또 8월중 승단대회에서 치러진 114국 가운데 어느 한쪽이 불참, 기권 처리된 대국이 18판이나 되고 대국 일자가 바뀌거나 무기 연기된 것이 무려 29판이다.
그 중 일부는 한 달이 지난 현재까지도 대국이 두어지지 않았다. 전체 대국의 40% 이상이 정상적으로 치러지지 못한 셈이다. 엄연히 공식 기전에 포함되는 승단대회가 일반 동호인끼리의 친선대국 수준으로 소홀하게 취급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이 승단대회가 기사들에게 천대받고 있는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대국료가 없다는 것. 외부 스폰서 없이 한국기원이 직접 주최하는 승단대회는 일체 대국료가 지급되지 않는다.
둘째 일반 기전과 달리 단위 차이에 따라 접바둑을 두도록 되어 있어 특히 고참기사들은 대회에 나가 봤자 현실적으로 승단이 어렵다는 것.
현재 승단대회 규정에 따르면 같은 단위끼리는 흑6집 공제, 1단 차이면 흑 4집 공제, 2단 차이면 흑 2집 공제, 3단 차이면 정선으로 두도록 되어있다. 하지만 엊그제 갓 입단한 초단을 호선으로도 이기기 힘든 현실에서 접바둑을 이긴다는 건 실로 하늘의 별따기.
결국 고참들은 후배들의 승단 들러리 역할로 전락했고 그러다 보니 자연히 하나둘씩 승단대회를 외면하게 된 것이다. 심지어 일부 기사들은 대회에 참가는 하되 승단 자체 보다도 모처럼 동료기사들을 만나 회포를 푸는 기회로 활용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당연히 승단대회 무용론이 거론되고 있다. 구태여 번거롭게 승단대회를 따로 열 것 없이 평소 공식 기전 성적을 계량화해서 승단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다.
일부에서는 모든 공식 기전에서 호선으로 겨루도록 되어 있는 자체가 프로기사라면 원칙적으로 비슷한 기량을 보유하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이므로 프로의 경우 아예 단위 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극단론까지 등장하고 있다.
어떤 결론이 내려질지는 바둑계의 몫이지만 어쨌거나 지금처럼 모든 기사들에게 외면당하고 있는 승단대회를 굳이 계속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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