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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악역 미워할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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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악역 미워할 수 없어요"

입력
2000.09.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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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서 악역이 달라졌다. 전통적인 악역은 태어날 때부터 악인이었다. 아무 동기와 이유 없이 단지 착한 주인공을 괴롭혀 시청자의 공분을 샀다. 그러나 지금의 악역은 인간적인 고뇌와 설득력을 지녔다.이들은 우선 악해질 수밖에 없는 절실한 사연을 지녔다. KBS 주말드라마 '태양은 가득히'의 강민기 (유준상) 는 친구 호태의 여자를 빼앗고 애인을 배신하지만 가출한 어머니로 인한 유년시절의 깊은 상처를 보면 결코 미워할 수 만은 없다.

신애 (KBS 미니시리즈 '가을 동화' 의 악역인 김윤경)도 그렇다. 주인공 은서 (송혜교) 와 운명이 뒤바뀌어 국밥집에서 보낸 어둡고 가난했던 유년, 생모를 찾았지만 은서 만을 그리워하는 가족들로 인해 마음에 그늘져 있다.

MBC '비밀' 의 지은 (하지원) 역시 공주처럼 자랐으나 현실과의 격차에 절망하는 상처를 안고 있다.

중반을 넘어선 SBS '덕이' 도 마냥 팥쥐노릇만 하던 귀진 (강성연) 이 조금씩 그 아픔의 실체를 보여줌으로써 공감을 얻고있다.

착한 귀덕과 비교당하며 억눌려 왔던 여린 심성을 드러내며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신애가 은서의 자리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맘에 듭니다" (가을동화) "항상 미움받고, 모든 걸 혼자서 해야 하는 귀진이가 사실 귀덕이 보다 더 불쌍해요." (덕이)

인터넷 게시판과 PC통신에는 이처럼 이들에 대한 지지와 공감의 글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악역이 지닌 아픔과 상처가 평면적인 주인공보다는 훨씬 인간적인 설득력을 지닌다.

시청자들은 뚜렷한 성취의지와 현실에 대한 도전적인 자세가 착하기만 한 주인공보다 거친 세상살이에 더 적합하다 생각할지 모른다.

주인공에 가려 항상 주변의 질시를 받는 '2인자의 슬픔' 도 발견한다.

악역에 애착을 보이기는 작가들도 마찬가지이다. '가을 동화' 의 오수연 작가는 "처음엔 준서와 은서의 멜로로 이끌고 갈 생각이었지만 신애의 비중을 더 부각시키는 쪽으로 방향전환을 고민하고 있다" 고 한다.

'태양은 가득히' 의 작가 배유미는 "민기의 캐릭터가 공감을 얻을 수 있는가가 이 드라마의 성공 관건" 이라고까지 말한다. 새로운 악역의 부상은 드라마가 이제 전형적인 인물상을 벗어나 악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 논리와 복잡한 인간 심리도 반영하는 유연성을 지니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일단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MBC '이브의 모든 것' 처럼,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설득력을 잃고 '콩쥐팥쥐' 류의 '권선징악' 으로 변질될 우려도 높다.

끝까지 균형감각과 섬세함을 유지해 나갈 수 있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양은경기자

ke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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