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경비구역 JSA' 는 23일 서울 100만명을 돌파했다. 개봉 15일만이다.'쉬리' 가 갖고 있던 최단 기록 (22일째) 을 갈아 치웠다. 전국 관객도 200만명을 넘었다. 이제 목표는 쉬리 (540만명)의 한국영화의 최고 기록을 뛰어넘는 것이다. 영화계 사람들은 말한다. "참, 심재명은 운도 좋아"
심재명 (37) 이란 바로 이 영화의 제작사인 명필름의 대표이고, "운이 좋다" 는 말은 그 명필름의 영화가 지금까지 모두 성공을 했기 때문이다.
1996년 제작자로 나선 이래 그는 단 한번의 실패도 없었다. 그가 "가장 힘들고 아찔했었다" 는 창립작품 '코르셋' 조차 손해를 보지 않았다. 이후 '접속' '조용한 가족'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해피 엔드' 까지 거침없이 질주했다.
모험을 피해 계산적이고 약삭빠른 상업성만 추구한다는 질시도 있었다. 그러나 '섬' 을 보면 아니다. 주류영화사의 저예산 영화 제작이란 대안으로 '섬' 을 선택했고, 그 선택은 해외에서의 호평이란 '또 다른 의미의 성공' 을 안겨주었다.
'공동경비구역…' 역시 새로운 도전이었다. 주류영화를 생리적으로 거부하는 B급영화 감독 (박찬욱) 에게 가장 현실적이고 민감한 남북문제를 맡겼다.
1998년 가을 독립영화집단 '장산곶매' 출신인 남편 이은이 원작 (박상연의 소설 'DMZ') 을 읽고 "이 영화를 하자" 고 했을 때 심재명은 '너무 위험하다' 고 생각했다. 상업적 성공은 다음 문제이고, 어쩌면 기존 체제까지 전면 부정하는 내용으로 제작과 상영조차 불가능할지 모르는 영화였다.
그래서 "지금의 이런 열광이 영화속 남북병사의 아이러니한 만남만큼이나 코미디처럼 느껴진다." 는 심재명. 그는 분단극복이야말로 새로운 천년에 우리가 해야 할 몫이라는 남편의 말을,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남편의 간절한 마음을 믿었다.
그 이야기에 분명 다른 사람들도 귀를 기울 일 것이라고. 다음부터는 그 믿음이 깨지지 않게 최선을 다하는 것 뿐이었다.
늘 이렇다. 그가 한물갔다고 여기는 치정극 '해피 엔드' 를 하자고 했을 때는 동생 심보경(33) 이, '접속' 에 욕심을 낼 때는 이은이 그랬다.
비록 B급 영화의 비약이나 엉뚱함이 있지만 '삼인조' 에서 보듯 박찬욱 감독이 가진 따뜻한 시선을 존중했다. 심보경도 영화적 식견이 넓은 그에게 단지 기회가 너무 없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박찬욱 감독이 쓴 시나리오에서 현재에서 과거로, 다시 현재로 바뀌는 구도와 원작에 없는 병사들의 교감이 너무나 재미있어 침울하고 무거운 주제를 젊은이들에게 전달하는데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제작자란 감독의 재능, 가능성을 최대한 영화에 발휘하도록 옆에서 도와주고 찔러주는 존재이다. "
언니가 시나리오, 캐스팅, 마케팅을 맡자 동생은 프로듀서로 현장을 책임졌다. 판문점 촬영이 허용되지 않아 동생이 9억원짜리 세트를 만들자고 했을 때도 언니는 '최고의 제작환경을 위한' 이란 동생의 판단을 믿었다.
언니야 동덕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1987년 극장 기획실에서부터 잔뼈가 굵은, '결혼 이야기'의 "잘까 말까 끌까 할까" 로 유명한 명 카피라이터이자 영화기획자지만 동생은 아니었다.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나와 메니지먼트 회사를 다니다 1993년에야 언니의 기획사로 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처음 그를 '언니 덕에 일하는' 존재 정도로 여겼다.
그러나 그가 독자적으로 기획한 '접속' 의 O.S.T (사운드 트랙 음반) 이 70만장이나 팔리자 그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심재명은 "동생이 훨씬 아이디어가 많고 친화력도 강하다" 고 했다. '해피 엔드" 에서 전도연을 캐스팅하고 그에게 노출연기를 할 수 있도록 만든 것도 동생의 친화력 덕분이었다고 했다.
동생이 말하는 언니의 장점은 13년의 경험으로 가진 직관력, 그리고 치밀함이다. 여기에 때론 과감하고, 때론 무모하다 싶을 정도의 현실적 이상주의자인 이은이 있다.
명필름에는 세 사람의 이사회가 자주 열린다. 심재명은 "가내수공업" 이라고 했다. "모자란 세 사람이 모여 완전한 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혼자 다 한다고 생각하면 너무 외롭다." 언니는 동시대 사는 사람들의 관심사를 영화에 담고 싶어하고, 동생은 젊은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다음 작품으로 언니는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 를, 동생은 '바이준' 의 최호 감독의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서로 " 왜?" 라고 하지 않는다. 대신 "정말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이냐" 라고 묻는다. 명필름이 되는 영화만 하는 것이 아닌, 되게 하는 영화를 만드는 이유일 것이다. 기대보다 반응이, 자신들에 대한 관심이 너무 엄청나 오히려 담담하다는 자매는 이제부터는 일년에 3, 4편 정도로 제작 편수를 늘리고, 색깔도 다양하게 가져 가겠다고 했다.
'섬 ' '공동경비구역 JSA' 로 얻은 자신감이다. "실패를 뛰어넘는 모든 길은 영화 속에 있다."
이대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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