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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준칼럼] 대통령만 있고 정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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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준칼럼] 대통령만 있고 정부는 없다

입력
2000.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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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수(渭水)가에서 세월을 낚으며 때를 기다리던 70넘은 노인 강태공을 등용한 문왕(文王)이 강태공에게 물었다. "군주가 모든것을 밝게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강태공이 대답했다. "눈을 밝게 보는 것이 중요하고. 귀는 밝게 듣는 것이 중요하며. 마음은 지혜로운 것이 중요합니다. 천하 만백성의 눈으로 사물을 보면 보이지 않는 것이 없고, 천하 만백성의 귀로 들으면 들리지 않는 것이 없고, 천하 만백성의 지혜로 생각하면 알지 못할 것이 없는 법입니다. 천하 만백성의 눈과 귀와 지혜를 하나로 모아서 군주에게 전해진다면 결코 군주의 밝음이 가려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문왕의 부친인 태공이 오래도록 기다린 사람이라 해서 태공망으로도 불린 강태공은 무왕을 도와 은(殷)을 멸하고 주(周)를 세우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경의선 철도 복원 및 도로 신설공사 착공식이 있었던 18일은 보통 때 같으면 민족의 대축제일이 되었을 것이다. 남ㅂ구의 혈맥을 잇는 첫 걸음인 경원선 복원공사 착공을 축하하기 위한 다양한 행사도 ㅇ려리고 기념우표나 기념담배도 나왔어야 했다.

그러나 남북분단외 역사에 새 획을 긋는 이날의 행사는 금융불안. 의료계 폐업. 한빛은행 불법대출사건 등 어두운 뉴스 속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국민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한 남북의 잇단 화해와 협력의 소중한 걸음들이 왜 평가다운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빛을 잃는 것일까.

지금 이 땅에는 대통령이 있으나 정부는 없는 형국이다. 대통령이 남북통일의 초석을 놓기 위해 50년 적장을 만나러 적진에 들어가는 모험을 하는데 국민생활을 책임져야 할 각료들은 오히려 국민생활을 흩으려 놓고 국민을 짜증나게 하고 있다.

무리하게 강행된 의약분업은 씨가 뿌려지기도 전에 당사자들의 반발에 부딧혀 애꿎은 국민들만 생명을 위협받는 불편을 겪고 있다. 국제 유가가 올랐다고 국내 가격을 올리고 네온사인 사용을 제한하고 차량 5부제를 실시하는 식의, 가격 상승분을 모조리 소비자에게 떠넘기는 대책을 만드는 게 장관이라면 장관노릇 하겠다는 사람이 천지다.

대출보증 외압의혹 사건이나 한빛은행 불법대출사건은 검찰의 수사결과를 검찰 내부에서조차 믿지 못하겠다는 비판이 일더니 결국 박지원 문화관광부장관이 물어나는 사태까지 빚었다. 그런데도 청와대 참모들이나 정부의 각료들은 만백성의 눈과 귀로 보고 듣고, 만백성의 지혜를 모을 생각은 않고 있다.

오죽 했으면 여당의 초 재선의원들이 하늘같은 당 지도부와 청와대를 향해 비판의 소리를 높이고 최고위원들 마저 겹치는 악재에 대처하지 못하는 정부를 질타하며 당의 무능을 놓고 난상토론을 벌였을까.

국민의 불만과 질타가 쏟아지는데도 정부는 계속 미적거리고 머뭇거리고 있다. 현재의 총체적 난국은 사실 정부가 시기를 놓쳐 초래한 자업자득의 성격이 강하다. 나라를 옥죄고 있는 현안들은 모두 정부가 미적거리고 눈치 보다가 적기를 놓쳐 악화된 것들이다.

문왕이 다시 "나라를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하고 묻자 강태공은 말한다. "빨래는 해가 머리 위에 뜬 한낮에 말려야 하고, 칼을 빼었으면 반드시 베어야 하며, 도끼를 들었으면 반드시 내려쳐야 합니다. 한낮에 빨래를 말리지 않으면 때를 잃는 것이며, 기껏 칼을 빼고도 아무것도 베지 않으면 좋은 기회를 잃는 것이며, 도끼를 들고도 내려치지 않으면 오히려 화근을 남겨 도적을 불러 들이게 됩니다. 물론 조금씩 흐를때 막지 않으면 마침내 큰 강을 이루어 막지 못하고 불은 막 피어오를때 끄지 않으면 결국 큰불이 되어 끌 수 없으며, 나무도 떡잎일때 잘라버지지 않으면 마침내 커다란 나무가 되어 도끼를 쓰지 않고서는 벨 수가 없습니다."

편집국 부국장 mjb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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