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는 더 이상 '그늘속의 영웅'이 아니다.나이와 질병, 사회적 차별까지 극복하고 올림픽 5회 연속 금메달이라는 역사를 창조한 영국의 스티브 그레이브(38)는 '위대한 올림피언'으로 길이 칭송 받을 것이다.
23일 시드니 레가타센터에서 벌어진 남자 조정 무타포어 결선서 레드그레이브가 참가한 영국팀은 500m지점서 0.88초, 1,000m지점서 0.46초차의 근소한 리드를 지키다 막판 1분에 40회의 노를 젓는 저력을 과시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레드그레이브는 1984년 LA올림픽 무타포어 우승 이후 16년간 5차례의 올림픽서 모두 금메달을 따내는 위업을 세웠다.
이는 1932년부터 60년까지 헝가리의 알라다르 게레비치가 펜싱 사브르 단체서 거둔 6연속 우승에 뒤지는 기록. 그러나 펜싱과 달리 조정은 엄청난 힘과 지구력을 요하는 종목이어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96애틀랜타 무타페어서 우승, 당시 영국에 유일한 금메달을 안겨준 그는 "다시 조정 근처에 얼씬 거리는 나를 발견하면 총으로 쏴도 좋다"며 은퇴를 시사했다.
더구나 이듬해 당뇨병에 걸려 하루에 다섯차례 인슐린 주사를 맞는등 시련까지 겪었다. 하지만 인간의 한계를 넘는 무서운 의지가 불혹을 앞둔 나이와 질병까지 극복했다.
사회적 편견도 넘어섰다. 사학의 양대 명문 옥스포드와 케임브리지대학이 템즈강에서 에이트 경기를 100여년 동안 치를 정도로 영국에서 조정은 귀족 스포츠다.
레드그레이브와 짝을 이뤄 이번에 3연속 금메달을 일군 동료 매튜 핀센트는 19명의 수상을 배출한 명문 이튼고교와 옥스포드대 조정팀 주장 출신이다.
반면 건축업을 하는 아버지에다 공립학교인 말로우 고교 졸업이 전부인 레드그레이브는 대표적인 블루칼러 출신. 이 때문에 4연속 올림픽 금메달, 9차례 세계선수권자에 오르고도 고국서 냉대를 받았다. '그늘속의 영웅'이란 달갑지 않은 칭호를 얻은 이유다.
"지난 4년간 이 영광을 위해 열심히 땀을 흘린 대가다"라며 "이제 끝을 맞았지만 이는 중요하지 않다. 조정인으로서 긍지를 잊지 않고 살아갈 것이다"며 우승소감을 밝혔다.
영웅의 퇴장은 쓸쓸하지 않았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기도 한 영국의 앤공주가 시상식에 참석, 직접 금메달을 목에 걸어줬고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IOC위원장은 그의 위대한 업적을 기려 금으로 특별 제작한 올림픽 핀을 달아줬다. 이제 그는 영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올림피언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장래준기자raj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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