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후 2시께 증권회사의 한 펀드매니저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진념(陳稔) 재정경제부 장관이 오후 3시께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에게 ‘파격적 규모’의 공적자금 추가조성안을 보고한다고 하는데 더 아는 바가 없냐는 게 그의 요지였다. 당초 정부는 23일 오전 공적자금 추가조성 규모를 발표할 예정이었다.이날 점심이후의 여의도 증시는 진 장관의 청와대 보고가 최대 호재였다. 오전에 20포인트 이상 빠졌던 종합주가지수는 점심이후 낙폭이 급속히 줄어들면서 5포인트 상승장으로 돌아섰다. 결국 막판에 매물이 쏟아져 10포인트 하락으로 장을 마감했지만 진 장관의 청와대 보고는 대단한 위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세상은 공평하지 않았다. 이 호재가 몇몇 기관과 큰손을 중심으로만 유통됐을 뿐이다. ‘개미’들은 아무 것도 모른 채 오르는 주가를 쳐다봐야 했다. 장마감후에나 이날의 호재를 알고 땅을 쳤을 것이다.
정보를 먼저 입수한 큰손들이 어떤 행동을 취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대규모 공적자금 추가조성으로 혜택을 입게 될 부실금융기관의 주식을 충분히 사놓았더라면 돈을 벌었겠지만…. 문제는 정보취득의 불평등을 방치하고 있는 정부당국에 있다. 정부는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던 사실을 당정협의라는 절차가 남아있다는 이유로 발표를 미뤘다. 밑이 줄줄 새는 쪽박만 품고 있었던 셈이다.
시장은 돈놀이게임을 하는 곳이다. 게임은 공정해야 한다. 이날 오후의 게임을 공정했다고 할 수 없다. 시장은 왜 정부를 불신하는가. 정책당국자들은 그 근본적인 이유를 잘 파악해야 한다.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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