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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 '올림픽 메달꿈' 키워낸 어머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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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 '올림픽 메달꿈' 키워낸 어머니들

입력
2000.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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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이 올림픽 열기로 뜨겁다. 우리나라에 첫 메달을 안겨준 사격의 강초현(18 유성여고3) 선수와 2관왕에 오른 양궁의 윤미진(17 경기체고2) 선수는 모두 앳된 여고생.그래서 이들의 승전보는 더욱 감동적이었다.

영광의 순간을 움켜쥔 이들의 뒤에는 어머니가 있다. 넉넉치 않은 살림 속에서 딸을 올곧게 키워낸 두 어머니가 만나 딸을 키우며 맛본 대견함과 안쓰러움, 기쁨과 보람을 이야기했다.

●김정희(46)

윤미진 선수 어머니. 윤창덕(54)씨와의 사이에 4녀1남을 두었다. 윤 선수는 넷째딸.

●김양화(41)

강초현 선수 어머니. 지난해 작고한 강희균씨와의 사이에 둔 고명딸이 강 선수이다.

▦김양화 = 미진이 어머니, 정말 축하드립니다.

금메달을 두개씩이나 따고. 제가 봐도 자랑스럽고 대견하더라구요. 미진이네 가족이 8명이나 되는 것도 참 부러웠습니다.

▦김정희 = 저도 초현이 경기를 TV로 지켜봤는데 다 잡은 금메달을 놓쳐 제 딸 일처럼 안타까웠어요. 그런데 초현이 모습이 의젓해서 너무너무 이뻐보이던데요.

어제 아침 신문 보셨어요? 초현이가 미진이 응원하러 와서 둘이 팔짱끼고 환히 웃는 모습이 보기 좋던데요.

▦김양화 = 네, 봤어요. 둘이 계속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사격과 양궁이 비슷한 경기잖아요. 미진이가 긴장되는 순간에 떨지 않고 대담한 것은 우리 초현이가 배웠으면 좋겠더라구요.

_ 따님이 시드니에 가기 전 무슨 말을 해 주셨어요.

▦김정희 = 8일 시드니로 가는 공항에서 보고 "메달 못따도 되니까 부담갖지 말고 하고 와라. 나이도 제일 어리니 앞으로도 기회가 많지 않냐"고 했어요. 그러니까 미진이가 "엄마 걱정하지마.

나를 위해 기도나 좀 해줘"라고 하데요. 개인전 전날 미진이가 전화를 했길래 "아빠가 좋은 꿈을 꿨으니 잘 될 거야"라고 해줬습니다.

그 전날 미진이 아버지가 예쁜 꽃에 벌이 많이 날아드는 꿈을 꿨거든요.

▦김양화 = 저는 공항에 배웅도 못 갔어요. 가기 일주일전에 초현이가 집에 와서 "주변에서 기대를 많이 하니까 부담스럽다"면서 너무 기대하지말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후회없도록 최선만 다하라고 했죠. 초현이는 대전국립현충원에 있는 지 아빠 산소에 들렀다 올라갔어요.

_ 경기중계는 보셨나요.

▦김양화 = 동네 사람들이랑 같이 중계를 봤습니다. 사람 마음이란 게 참 우습데요.

처음에 결승에 진출했을 때는 적어도 은메달은 따게 됐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더니 막상 0.2점차로 지니까 너무 섭섭했어요.

처음부터 졌으면 모르겠는데 8발까지 앞서 나가다가 마지막 2발에서 역전되니까 더 그랬나봐요.

그리고 또 초현이 아빠가 살아있었으면 얼마나 기뻐했을까 생각하니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군요.

근데 초현이가 "금메달이라는 목표가 있으니 은메달이 더 좋은 거 같다"고 말하는 걸 보고 위안이 됐습니다.

▦김정희 = 저는 안봤습니다. 미진이 운동하면서 생긴 버릇인데 경기 있는 날은 절에 가서 기도만 드려요.

개인전 하는 날도 아침에 절에 가서 기도 드리고 와서 거실에서 친척들이 TV를 보고 있어도 저는 귀로만 듣고 안방에서 물 떠놓고 기도만 했어요. 금메달 결정되고 나서야 봤죠.

하지만 단체전은 맘 편하게 봤어요. 김수녕, 김남순 선수가 워낙 잘 하니까 편하게 봐 지데요. 우리 딸이 너무너무 침착하게 활을 쏴 내가 봐도 대견했어요. _ 운동을 시작할 때 반대는 안했나요.

▦김정희 = 초등학교 4학년 때 양궁부에 들어가겠다고 하더라구요. 처음에는 미진이가 공부도 잘해서 반대했죠.

제가 "운동을 특출나게 잘하면 좋은데 그게 어디 쉽냐"고 했더니 그래도 하겠다고 그러더라구요.

그런데 6학년때 전국소년체전에 나가 금메달을 따 오고 양궁부가 있는 수원 수성여중으로 가더니 지금까지 운동을 하게 된 거죠.

▦김양화 = 초현이는 중1 때 시작했어요. 초현이 8촌오빠가 지금 유성여고 감독(강재규)인데 오빠가 멋져보였나봐요.

처음에는 당연히 반대했죠. 사격이 비인기 종목이고 또 초현이가 운동하기에는 너무 작아서 말렸습니다. 오죽하면 중학교때 선생님들이 우스개로 "총이 너보다 크다"고 했을 정도니까요.

초현이가 해병대 사격교관이었던 아버지를 닮아 소질이 있나 보다 했는데 소년체전, 전국체전에 나가 금메달을 따는 것을 보고 그 다음부터는 "네가 선택한 길이니 힘들어도 네가 책임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_ 따님이 운동하면서 힘들어 한 적은 없나요. 가슴아팠던 적도 있을텐데요.

▦김양화 = 초현이는 어른같아 힘들어도 내색을 안해요. 어찌보면 초현이가 엄마 걱정을 더 많이 하는 것 같기도 해요.

초현이 아버지가 1968년 청룡부대원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수류탄 파편에 맞아 휠체어 신세를 지게됐고 후유증으로 계속 병원을 오가야 했지요.

나는 늘 병원에 붙어 있어야 했기 때문에 고명딸인 초현이가 혼자서 밥해먹고 다녔어요. 지난해 아버지 돌아가시고 많이 힘들어 했어요.

초현이가 아빠를 참 많이 닮았거든요. 힘들 땐 아버지 산소에 자주 갔나 봐요. 메달 딴 후에 집에 전화해서 아버지 무덤 가에 꽃을 심고 싶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그저께 남편 친구분 도움으로 무덤가에 꽃을 심어 줬습니다.

▦김정희 = 미진이도 힘든 적이야 많았겠지만 좀처럼 표현을 하지 않아요.

게다가 형편이 어려워 제대로 신경을 못 써줘서 늘 미안해요. 충남 대천에서 농사짓다가 90년에 수원으로 온 가족이 올라 왔는데 우리 부부가 가진 기술이 없어서 맞벌이를 해야 했거든요.

중학교 때 학교에서 합숙하느라 1주일에 한 번 집에 왔는데 그럴 때 내 손으로 밥 한번 못 지어 먹이고 학교에 갖고 가는 1주일치 반찬도 제대로 못 챙겨준 게 아직도 마음에 걸립니다. ▦김양화 = 아버지 돌아가시고 난 후 초현이 성적이 급상승했어요.

그때까지 국가대표가 아니어서 올해 초 올림픽 출전권을 따러 사비를 들여 외국 경기에 나가야 했고 총도 좋은 것으로 사줘야 했지요.

아버지가 상이군인이어서 수백만원하는 총을 덥석 사줄 수 있는 형편은 아니었습니다.

▦김정희 = 사실 형제도 많고 집안 형편도 넉넉치 않아 계속 바꿔줘야 하는 활도 처음 시작할 때 80만원짜리로, 한번 밖에 사주질 못했어요.

지금 쓰는 300만원짜리 활은 학교(경기체고)에서 마련해주어서 부모로서 미안하지요.

_ 메달을 딴 후 달라진 것은 없습니까.

▦김정희 = 우리 가족한테 큰 변화는 없어요. 단지 주변 사람들이 많이 알아보고 축하해 주고, 기자들도 많이 찾아오고 높은 양반들이 화환도 보내주고, 그런 것이 달라진 점이지요.

앞으로 미진이 아빠도 계속 덤프트럭을 운전할 거고 저도 계속 식당에서 일을 할 거예요. ▦김양화 = 우선 제 딸을 많이 좋아해 주니까 좋죠. 얼마 전에는 초현이 친구가 초현이 팬클럽 홈페이지가 생겼다며 내용을 조금 뽑아 왔어요.

CF 모델 제의가 들어왔다고들 하는데 직접 연락온 것은 없어요. 그런데 사람들의 그런 관심이 좋으면서 힘들어요. 언론 인터뷰도 피하고 싶고.(웃음)

_ 앞으로 딸들이 어떻게 살아주기를 바랍니까.

▦김정희 = 계속 1등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굴곡이 있을 텐데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또 유명해졌으니 그에 맞게 모든 사람에게 겸손하게 행동했으면 좋겠구요. 또 철이 좀 들어야죠. 제가 보기엔 또래와 똑같은 애거든요.

시드니대표선수단 환송공연날 유승준 오빠랑 이야기했다고 아주 기분이 좋아서 전화를 했더라구요. 미진이가 가수 유승준의 팬이거든요. 유승준씨, 미진이 오면 좀 만나줘요.(웃음)

▦김양화 = 초현이는 조성모 팬인데(웃음). 더구나 조성모씨가 초현이한테 장학금까지 준다니 너무 고마워요.

초현이가 말한 대로 다시 금메달이라는 목표를 가졌으니 계속 열심히 해서 4년 후에는 금메달을 따면 좋겠습니다.

_ 따님들이 돌아오면 뭘 해주고 싶으세요.

▦김양화 = 그냥 꼭 안아주고 싶어요.

▦김정희 = 주변 사람들 불러모아서 잔치 벌여야죠

사진= 박서강기자

사진설명 : 김정희씨(왼쪽·윤미진선수 어머니)과 김양화씨(오른쪽·강초현선수 어머니)

노향란기자

ranhr@hk.co.kr

김기철기자

kim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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