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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펜싱 꾸준한 투자 '금빛 싹' 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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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펜싱 꾸준한 투자 '금빛 싹' 틔었다

입력
2000.09.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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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펜싱은 불과 10여전만 해도 완전한 불모지였다. 그러나 시드니올림픽에서 금 1, 동 1개로 새 효자종목으로 떠올랐다.한국펜싱의 비약적인 발전은 투자의 결실. 장영수 대한펜싱협회 회장(현 아시아펜싱연맹회장. 대우건설 사장)이 1995년 취임 이후 약 30억원을 쏟아부었다. 대표선수들은 협회의 지원으로 매년 두 달정도 해외 전지훈련을 해왔다.

협회는 98년부터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다음으로 위상이 높은 그랑프리대회를 국내에서 개최하고 있다. 올림픽 티켓이 걸린 99세계선수권대회를 유치하기도 했다. 5월에는 아시아지역예선도 서울에서 열어 티켓 2장을 추가했다. 선수들도 국제경험이 많아지다 보니 자신감이 붙었다.

성과는 서서히 나타나 세계 A급 대회에서 상위입상을 하기 시작했고 98방콕아시안게임 때는 금 5개 등 13개의 메달을 따면서 아시아 최강 중국의 아성을 깨뜨리는 데 성공했다.

선수와 코칭스태프들간의 유대도 성적의 '업그레이드'에 한 몫 했다. 김헌수 플뢰레 코치는 김영호를 1대1로 전담하다시피 하며 숙식을 같이 했다. 에페 이일희 코치 부인 김동임씨는 대회가 있으면 자원봉사를 자청하는 등 한 가족 처럼 뭉쳐 있다.

선수들은 타 종목과 달리 경건한 마음을 갖는 데 좋지 않다고 개고기 등 보신음식을 입에 대지 않는 등 정신적 일체감도 대단하다.

1935년 고 김창환씨 등 일본유학생들이 펜싱을 처음 국내에 소개한 후 한국은64년 도쿄올림픽 때 첫 출전했으나 전원 예선탈락. 그 후 올림픽 출전의 길이 막히다가 20년만인 84 LA올림픽 때 다시 출전했다.

96애틀랜타서 김영호와 고정선(여자 에페)이 나란히 개인전 8위에 올라 도약의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리고 4년여만에 꾸준한 투자와 펜싱인들의 노력으로 세계 정상에 섰다.

김정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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