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동안 거의 1년에 한번씩 전학을 하였다. 결석도 잦았다. 또 도둑질이나 나쁜 짓은 다하고 다녔었다. 그리고 아빠와 같이 있다가, 엄마와 같이 있다가 고모와 함께 살기도 했다. 게다가 엄마는 몇년전 집을 떠났다.내가 비뚤어진 것은 4학년때부터인 것 같다. 매일 밤 10시까지 놀러다니고 친구 집에서 자거나 길거리에서 잔 적도 있다. 또 오락실 기계의 뚜껑을 열어돈도 훔쳤다.
그러다 6학년 2학기쯤 ‘자유의 집’에 들어갔다. 아버지는 새 엄마와 함께 나를 데리고 새출발을 하려 했지만 잘 안됐기 때문이다. 거기서 하루종일 술만 마시는 사람도 보고 새출발하려는 사람도 보았다. 물론 배운 것도 많다.
하지만 그곳에선 학교를 다닐 수 없어 ‘열린문 사회복지관’ 즉 지금 내가 사는 곳에 보내졌다. 깡패 형들만 사는 곳인줄 알았는데 와보니 딴판이었다. 형들은 다 좋았다. 이제 1년 2개월째. 이곳은 이제 나의 집이다. 그동안 아빠의 행방도 찾고 고모 등 친척도 만났다.
단체생활이어서 서로 도움이 되고 느끼는 것도 많다. 혼자서만 세상을 사는게 아니란 걸 여기서 느꼈고, 이 세상엔 나보다 더 불쌍한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았고, 그들에 비해서 우리는 행복하다는 걸 배웠다. 이곳에선 아침 6시에 일어나야 하지만 부지런해져서 좋다.
예배를 드리고 나면 잠이 다 달아나 버린다. 그리고 학교에 가면 반에서 제일 일찍 도착하거나 2,3번째이다.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가족들이 따뜻이 맞아준다. 전에 없던 안정감이 생긴다. 예전에는 별로 웃을 기분이 나지 않았지만 이제는 매일 웃는 표정이다.
나도 남부럽지 않은 가족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 늘 기쁘다. 우리 가족은 자그마치 17명이다. 전에는 아빠와 나 2명이었지만 17명이 된 것은 이곳 사람들이 다 가족이 되었기 때문이다. 항상 옮겨 다니며 정착을 하지 못하는 불안감은 사라졌다. 가끔은 잘못을 저질러서 혼도 나지만 이런 게 바로 가족이라 생각한다. 이곳에서 사는 나는 이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
서울 장안중2 구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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