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검객의 칼끝이 세계를 찔렀다. 20일 시드니 올림픽 펜싱 플뢰레 개인전에 출전한 김영호 선수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독일의 비셀도프의 어깨에 칼끝을 대는 순간 들어온 빨간 득점신호와 더불어 한국의 펜싱은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 마스크를 벗고 두손을 들어 포효하는 김 선수를 텔레비전을 통해 지켜보던 국민들은 환호했다. 그것은 목마르게 바라던 금메달을 하나 따냈기 때문이 아니다.펜싱하면 중세 기사들의 검투를 연상시킬 정도로 전통적인 유럽인의 스포츠이며, 우리들에겐 여전이 생경한 종목이다. 올림픽에서 이 종목 금메달은 프랑스나 독일등 유럽대륙 검객들이 차지했고, 또 당연히 그들의 몫이거니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극소수의 한국 펜싱 선수들은 그 두꺼운 벽에 도전했다. 그리고 해냈다. 김 선수의 금메달과 이상기 선수의 동메달은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시키는 쾌거였다. 지금은 불가능할 것 같은 다른 종목도 의지와 훈련에 의해 언젠가 우리의 금메달 종목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선수는 물론 펜싱계 와 그 후원자들의 남모르는 노고는 평가받을 만 하다.
펜싱 금메달은 비인기 종목에 대한 우리의 무관심과 프로 스포츠로 물들어가는 올림픽 운동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지난 20년간 올림픽운동은 급격한 아마추얼리즘의 상실을 동반했다. 평소 일부 인기종목 선수들은 부와 인기를 얻으며 올림픽 경기장에서도 영상매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아마와 프로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이 시대의 흐름이긴 하지만, 비인기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고 국민적 관심을 일으키는 것은 스포츠를 통해서 우리 사회가 다양하게 발전하는 계기가 되는 일이다.
시드니 올림픽은 이제 새로운 영웅들과 무용담을 만들어 내며 중반에 접어들고 있다. 양궁에서 윤미진 김남순 김수녕이 나란히 금·은·동메달을 쏘고 또 단체전을 석권하여 올림픽 공원에 세개의 태극기를 날리는 모습에서, 사격에서 강초현이 마지막 순간에 금메달을 놓치고 애석해 하는 표정에서 국민들은 환희와 아쉬움을 느꼈다. 올림픽 선수 누군들 명예와 포상이 주어지는 메달을 따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세계정상은 하나뿐이다.
우리는 올림픽을 개최했고 종합 6위의 성적을 낸 스포츠강국이다. 이제 성숙해질만 한 연륜을 쌓았다. 국가를 대표하여 혼신의 힘을 다한 선수와 임원들에게 아낌없는 격려의 박수를 보내자. 중요한 시합을 앞두고 스트레스를 카지노에서 푸는 따위의 행동은 용서할 수 없는 옥에 티다. 프로도 올림픽에서만은 아마정신으로 무장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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