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국민을 대표하는 국가수반으로서의 얼굴이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집권당의 대표로서의 얼굴도 있다. 나라와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이 특정 정당의 총재직을 갖는다는 것이 일견 어색하기는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선 흔한 일이다.■우리의 경우 대통령의 정당 총재직 겸임을 놓고 정치권에서 오랫동안 입씨름을 벌여왔다. 최근 한나라당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민주당 당적이탈을 요구, 또다시 이런 논쟁에 불씨를 당기려 하고 있다. 대통령의 당적시비는 야당의 단골메뉴다. 대통령선거 등 중요한 선거가 있을 때, 여야간에 힘겨루기로 정국이 경색될 때 야당은 으레 대통령의 당적이탈을 촉구하고 나섰다. 물론 야당총재 시절 YS도 그랬고, DJ도 그랬다.
■야당의 요구가 받아 들여진 적은 거의 없다. 요구할 때와 그 요구의 대상이 될 때, 처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화장실 들어 갈 때와 나올 때 입장이 달라지는 것과 진배없다. 그러나 단 한번의 예외는 있다. 6공말께 노태우 대통령의 경우다. 당시 그는 공정한 대선관리라는 명분으로 DJ의 요구를 받아들여 민자당 당적을 이탈했고, 이른바 거국내각도 구성했다. 야당의 요구라기 보다는 여당후보였던 YS와의 갈등때문이었다는 뒷얘기가 있기는 하다. YS는 임기말 DJ의 요구에 끄덕도 하지 않았다.
■사실 대통령이 당적을 버리면 정치적 기반이 취약해진다. 국회에 대해 왈가왈부 할 수도 없게 된다. 여야의 개념도 모호해질 수 밖에 없다. 지금 민주당을 여당이라고 하는 것은 대통령이 속한 정당이기 때문에 그렇게 불러주는 것이지, 의석수에서는 한나라당에 훨씬 못 미친다. 행정부는 그야말로 중립적 입장에 처하게 되며, 정책협의 대상도 없어진다. 대통령 입장에서는 정치적 행위의 인풋-아웃풋의 피드백 순환고리가 끊어지게 되는 것이다. 대통령은 어쩔 수 없이 국정에만 전념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국정에는 어떤 효과가 미칠까. 마이너스가 될까, 플러스가 될까. 이것이야 말로 미묘한 ‘정치적 실험’이 될 것이다.
/이종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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