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81kg급에서 은메달을 딴 조인철(24. 용인대대학원)은 한국유도의 간판스타이다. 그러나 그의 유도인생에 순풍만 불었던 것은 아니다. 조인철은 부상으로 쓰러졌다 일어나기를 반복한 ‘오뚝이’였다.대학 1학년 때 늑막염으로 1년 정도 운동을 중단했다. 수술 후유증으로 체력까지 저하돼 주변에서는 운동이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강한 정신력으로 극복해냈다.
98년에는 인대봉합 수술을 받고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지난 해에는 목디스크 수술을 받았고 팔 마비증세까지 나타나 ‘조인철 시대의 종말’이 예고됐지만 그때도 재기했다.
조인철은 또 어려운 가정환경을 딛고 일어선 주인공. 트럭운전을 하던 아버지 조명식씨는 현재는 청주 명암파크호텔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고 어머니 경연순씨는 충북 청주시 산남동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하고 있다.
96세계대학생선수권대회 1위로 국제무대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조인철은 96애틀랜타올림픽 3위에 올랐다.
97년에는 세계선수권과 파리오픈을 석권했다. 오른쪽 허벅다리걸기와 배대뒤치기, 그리고 기습도 특기이다.
승부욕과 집념도 대단하다. 스카우트대상이 못됐던 조인철이 용인대에 진학하기 위해 직접 교수들을 찾아다니며 입학을 간청했던 이야기는 그의 집념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이다. 조인철의 꿈은 모교 교수가 되는 것.
그의 성실성과 지도력을 높이 사고 있어 꿈은 곧 실현될 것이라는 게 학교 관계자의 말이다.
/시드니=특별취재반
■조인철 일문일답
“최선을 다했지만 금메달을 못따 착잡할 뿐입니다.” 조인철은 96애틀랜타올림픽 동메달이후 다시 금메달에 도전했지만 실패한 것이 못내 아쉬운 듯 눈물을 글썽이며 소감을 털어놓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준비과정은 어땠나.
“준비과정도 그렇고, 경기운영도 그렇고 코칭스태프와 혼연일체가 돼 열심히 했는데 금메달 목전에서 무너져 아쉬움이 남습니다. 앞으로 남은 선수들이 금메달을 땄으면 좋겠습니다.”
-기술적인 문제는 없었나.
“다키모토와 만날 줄 예상했습니다. 2년동안 왼쪽 업어치기를 집중 연습했는데 노련한 다키모토에게 먹혀들어가지 않은 것이 패인입니다.”
/시드니=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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