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국제유가를 진정시키기 위해 전략비축유(SPR)라는 ‘비장의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SPR은 미 행정부가 석유공급시스템이 깨지는 비상시를 대비해 비축해 놓은 석유.SPR의 방출은 지금까지 1991년 단 한 차례에 불과할 만큼 엄포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 위력은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수백만배럴을 증산하는 것 이상의 영향을 미쳤다.
현재 SPR은 텍사스와 루이지애나주 등에 있는 염전 땅굴속에 약 5억 7,000만 배럴(1997년 기준·31일분)이 저장돼 있다.
미국 석유연구소(API)가 집계한 최근 미국내 일반 석유재고량 2억 7,970만 배럴의 2배가 넘으며 세계 각국 정부가 보유한 총 비축량인 12억 배럴의 절반에 가까운 규모이다.
요즘도 하루 57만 배럴 정도가 이 곳의 오일탱크에 주입되고 있으며 현재까지 석유비축에 투입된 돈만 해도 시설비를 포함, 모두 200억 달러에 이른다.
이러한 막강한 SPR의 존재는 언급 자체만으로도 유가를 잡는 소방수 역할을 해왔다. 실제로 지난 10일 OPEC의 80만 배럴 증산합의에도 불구하고 떨어지지 않던 석유값이 지난 12일 빌 클린턴 대통령의 SPR 방출 검토라는 한 마디에 주춤거렸던 사례만 봐도 그 위력을 알 수 있다.
미국은 지난 1991년 걸프전 당시 3,375만 배럴을 방출하려다 유가가 안정을 되찾아 1,730만 배럴만을 방출하는 등 SPR을 항상 ‘최후의 수단’으로 고려하고 있다.
현재 미국의 비축유 방출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겨울을 앞두고 난방유 수요가 급증할 것이고 오는 11월 대선이 가까이 올수록 유가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까지 치달아 선거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불안감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방출검토규모는 일단 비축유의 약 5% 정도. 당장 가수요를 잠재우는 심리적인 효과를 얻을 정도의 양이다.
그러나 미국이 전략비축유를 풀면 다른 석유소비국들도 비축유를 풀게 되므로 파급효과는 더욱 커진다. 현재 1997년 기준으로 일본은 3억 1,500만 배럴(55일분), 독일은 2억 1,600만배럴(77일분)이 비축돼 있다. 클린턴의 SPR 방출 검토 발언이 나오자마자 OPEC가 당황한 것도 이 때문이다.
베네수엘라와 이라크는 OPEC 회의장에서 “SPR이 방출될 경우 시장이 엄청나게 교란될 것”이라며 반발했다. 미국은 원유매장량 규모로 볼 때 미국은 400억 배럴로 중동과 러시아에 이어 전세계 3위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석유 수요 증가에 전혀 손을 쓰지 않다가 유가가 상승하자 책임을 산유국에만 돌리면서 비축유 방출이라는 카드로 산유국을 압박하는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고 일부 산유국들은 비판하고 있다.
최진환기자
cho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