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통령-김용순비서 2시간15분 환담·오찬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14일 낮 청와대에서 김용순(金容淳) 북한 노동당 비서 일행을 접견하고 오찬을 함께 했다. 접견 30분, 오찬 1시간 45분 등 2시간 15분동안 김 대통령은 체제의 이질성을 극복하기 위한 인내와 ‘역지사지(易地思地)’의 이해심을 당부했다.
접견 김 대통령은 이날 오전 11시 30분 김비서를 맞이하고 송이버섯, 제주 등을 화제로 대화를 나눴다. 김 대통령은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안부를 묻고 “좋은 추석 선물에 감사한다고 전해달라”고 말했다. 김 비서는 “김 위원장이 송이버섯을 추석 아침에 드실 수 있도록 보내라고 당부했다”고 전했다. 김 대통령은 “맛있게 먹었다”면서 “향취가 좋았다”고 말했다.
김 비서가 제주, 경주의 아름다움을 거듭 얘기하면서 “조상들이 삼천리 금수강산이라고 한 이유를 알 것 같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귀한 손님이 왔는데 태풍이 온다고 해서 걱정이 됐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김비서가 전한 김 위원장의 메시지를 듣고 “공동선언을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고 화답했다. 김 대통령은 “우리가 민족의 운명을 결정하는 자리에 있다”면서 “100년전 선조들의 잘못된 선택으로 후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당부했다. 김 대통령은 “국민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면서 “차분히 하나 하나 해나가는 것이 빠른 길”이라고 조급함을 경계했다. 이에 김 비서는 “책임적으로 전하겠다”고 답했다.
김 대통령은 이어 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뉴욕방문 무산을 거론하며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김영남 위원장이 방문했으면 미국도 뭔가 분위기를 바꾸려 했다”면서 “미국도 이 사건에 상당히 당황하고 섭섭해하더라”고 전했다. 김 대통령은 특히 “자주도 중요하지만 주변국과의 잘 지내야 평화정착도, 경제협력도, 국제기구의 지원도 수월해진다”고 충고했다. 김 대통령은 또 “우리는 오랫동안 다른 체제에서 살았기 때문에 역지사지해야 한다”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는만큼 인내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 비서는 “김영남 위원장은 국가를 대표하는 분인데 몸 수색을 당해 자존심이 상했다”면서 “김 대통령과의 회담이 이루어지지 못해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비서는 “대통령 말씀대로 자주가 중요하고 타국과의 관계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오찬 오찬장의 화제로 제주도, 풍산개와 진돗개, 평양회담에서의 일화 등이 올랐다. 김 대통령을 비롯 김 비서 일행, 우리측 배석자 모두 밀쌈, 잣죽, 전복구이, 갈비살구이와 송이, 갈치구이, 쌀밥과 두부국, 과일 순으로 나온 한식을 다 비울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다고 박준영(朴晙瑩) 대변인이 전했다.
김 비서가 삼별초가 몽고군에 저항했던 제주도의 항몽유적지를 화제로 올리자 김 대통령은 몽고 침입시기, 삼별초의 저항내용을 자세히 설명했다. 김 대통령은 김 비서가 “헝가리 사람들이 자신들이 몽고의 유럽침입을 막았다고 자랑하더라”고 말한데 대해 “당시 헝가리의 능력으로 막은 게 아니라 징기스칸이 본국에서 사망하는 바람에 몽고군이 회군한 것”이라고 정정해주었다.
김 대통령은 식사에 앞서 “김 비서가 특사로 와서 훌륭한 결실을 맺은 데 대해 치하한다”면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 대통령은 “여기 있는 사람들이 마음을 비우고 진실한 노력을 해달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비서는 “어디를 가도 치마가 있고, 김치가 있었고 말로만 듣던 제주와 경주도 다녀왔다”면서 “어떤 일이 있어도 공동선언을 실천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식사가 진행되면서 부드러운 화제가 식탁위에 올랐다. 김 비서는 이희호(李姬鎬) 여사가 쓴 ‘나의 사랑, 나의 조국’을 읽었다면서 “김 위원장도 김 대통령의 고난, 이 여사의 고통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 비서는 “평양회담 때 김 대통령이 격식을 택하지않아 일이 잘됐다”고 말하자 김 대통령은 “그것 때문에 혼났다”면서 “일정도 모르고 김 위원장이 공항에 나오는 지도 정확히 알지못해 곤란한 점이 많았다”고 뼈있는 조크성 지적을 했다.
/이영성기자 leeys@hk.co.kr
이영성기자
leeys@hk.co.kr
■金대통령에 전한 金위원장 구두메시지
"6·15선언 실천상황 만족"
“김정일 장군이 따뜻한 인사를 드리라는 당부를 했다.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께 따듯한 인사를 정중히 전달한다. 역사적인 평양 상봉과 공동선언이 훌륭한 내용을 담고 있고, 남북이 이를 확실히 실천해 가고 있는 데 대해 김 장군도 대단히 만족해 하고 있다고 전해달라고 했다.
김 장군은 특히 김 대통령이 평양에서 허례허식을 싫어한다고 말한대로 공동선언을 잘 집행해 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공동선언 서명이 확실히 말라가고 있고 그것이 굳어지고 있다. 이것을 더 굳어지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동선언에서 훌륭한 내용들이 많이 있었는데 과거처럼 되돌아가서는 안된다는 등의 말씀이 있었다.
어떤 경우에도 공동선언을 확실히 이행해야 한다는 마음이 김 장군에 충만해 있다. 이런 뜻이 대통령께 보내는 김 장군의 메시지다. 평양을 떠나올 때 김 장군은 진돗개가 잘 자라고 있다는 말씀을 전해달라고 했다.
지난번 상급(장관급)회담 때 보내준 풍산개 필름을 잘 보았다고 했다. 선물로 의미가 있는 게 아니고 민족 단합과 통일의 상징이라고 생각한다. 김 장군이 대통령의 말씀을 잘 듣고 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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