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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여자들도 즐거운 한가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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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여자들도 즐거운 한가위로

입력
2000.09.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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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기다리고 기다리던 명절은 추석과 설날이었다. 평소에 먹지 못했던 맛있는 음식과 추석빔, 설빔이라고 하는 새옷을 입는 기대감으로 가슴 벅찬 날이 있었다.그러나 결혼한 후 오늘의 명절은 며칠전부터 가계부를 들여다보며 여러가지 예산을 짜고, 앞으로 닥칠 명절대사에서 해야할 일들을 머리에 그려보면서 미리부터 걱정을 해야하는 날이 되었다.

더구나 현대 여성의 절반가량이 직업을 갖는 취업여성이고 보면 명절을 지내고 난 뒤엔 항상 피로가 쌓여 몸살이 생길 지경이니 직장에서의 업무능률이 저하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기에 요즘 기혼 취업여성들은 명절을 ‘고생절’이라고도 하고 ‘명절 스트레스’라는 새로운 용어가 생길 정도이다.

어릴적 그렇게 즐겁던 명절이 성인이 된 후 왜 이렇게 힘든 날이 되었을까. 여성은 자기가 자라온 원가족에서의 생활과 결혼후 시댁 생활에서 크나큰 가족문화의 차이를 감수해야 한다.

특히 직장을 가졌다면 아무리 이해심이 많은 시댁에서라도 며느리에게 기대하는 역할을 다 하려니 직장과 가정에서 2중 역할을 해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전통적 며느리’의 역할까지 바라는 시집 식구들의 기대감까지 헤아려야하는 부담을 안게 되기 때문이다.

원래 명절은 가정의례의 하나이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의 명절은 설날과 추석 이외에 3월 한식, 5월 단오, 7월 칠석, 10월 동지 등이 있지만, 추석과 설날은 우리나라 2대 명절로 우리민족의 대이동이 이루어지는 국가적 명절이 되고 있다.

아무리 현대화하고 정보화했다고 해도 명절지키기 행사는 한국가족의 구조적 특성을 보이는 좋은 예이다. 부모에 대한 효 의식의 지속성, 조상에 대한 숭배의식에 따른 극진한 제사관, 이것이야말로 한국 가족만이 갖는, 끈질기게 이어져오는 가족주의의 일면이다.

몇년전 미국 텍사스대학에서 한국가족의 특성을 특강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 미국 학생들의 반응은 지나치게 개인주의화한 미국사회에서 한국가족의 일면을 그들이 배워야 한다는 소감을 말하는 학생이 많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명절을 통한 가정의례는 가족의 결속감, 통합성, 유대감을 창출하는 계기가 된다. 부모와 자녀, 그리고 결혼후 시댁 부모, 형제·자매가족과의 모임를 가짐으로써 각기 분리되었던 가족원들의 의식과 정서 등을 나누는 기회가 되고 가족에 대한 정체감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또 명절의례는 가족들이 갖고 있는 가치있는 자원을 알게 돼 가족 성원이 친밀감과 더불어 자부심을 형성하고, 화합하는 장이 되기도 한다.

이렇듯 의미있고 중요한 명절이 고생절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가족원들이 지혜를 모아 지나치게 전통적 형식이나 가부장적 형식에 연연해 여성들, 특히 며느리들에게만 일을 강요하는 폐단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의 사회학자인 보싸드와 볼은 가정의례를 가족원들을 끌어당기는 형태의 즐거운 의례로 발전시키는 것은 가족원들의 지혜와 역량이라고 했다. 명절은 즐거운 날, 보고 싶은 가족들을 만나는 날, 정성을 나누는 날로 만들도록 해야할 것이다.

특히 가정의 어른들, 남성들은 명절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 과잉의례, 과잉전통성을 현대적, 남녀평등적 방향으로 전환시키는 선도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지나치게 이기적이고 이해타산적 습성이 길러지기 쉬운 요즘, 우리나라의 명절은 공동체 의식, 진정한 사랑, 가족원의 즐거움을 나누는 의미있는 가정의례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유영주 경희대 생활과학대 교수·한국가족상담교육단체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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