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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 사극전성시대 이끈 작가들 이환경vs최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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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 사극전성시대 이끈 작가들 이환경vs최완규

입력
2000.09.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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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이야기 金脈… '역사교과서 역할' 자각땐 두려움"사극(史劇) 전성시대다. 역대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허준’에 이어 최근엔 ‘태조 왕건’이 정상에 올랐다.

유치원생들이 이쑤시개로 침놓는 흉내를 낸다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사극 때문에 TV채널 선택권이 남성들에게 넘어갔다는 말이 나올 만큼 전대미문의 사극 열풍이다.

그 내용을 둘러싼 ‘역사왜곡’논쟁은 인기를 반영하는 또다른 단면이다.

‘태조 왕건’과‘허준’의 작가 이환경, 최완규씨에게 사극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요즘들어 사극이 왜 이렇게 인기입니까. ▲이환경= 1970년대에도 사극은 인기가 있었습니다.

정통사극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아씨’나 ‘청사초롱’같은 드라마가 그랬지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원래 역사를 옛날 이야기처럼 듣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런 기본 정서에다가 요즘 사극이 보여주는 현실에 대한 은유가 먹히면서 사극 붐이 생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대적 분위기도 한 몫을 했다는 얘기지요.

사람들이 현실에서 느끼는 답답함이나 의문을 사극을 통해 해결하려 한 거죠. ‘용의 눈물’은 15대 대통령선거라는 상황과 맞아 떨어져서 그만한 인기를 누리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허준’이 이미 2회나 드라마로 다룬 소재였는데도 60%라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올린 것도 혼탁한 세상에서 허준같은 헌신적인 지도층을 바라는 사람들의 심리가 작용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최완규= 그런 면도 있지만 저는 작품 자체가 발하는 힘도 컸다고 봅니다. 예전에는 사극하면 ‘재미없고 늙은 사람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잖아요.

이 고정관념을 ‘용의 눈물’이 철저한 고증과 역동적 구성으로 깨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드라마를 잘 보지 않던 젊은 사람들과 남성 시청자를 TV앞으로 끌어들였죠.

거기에 이어서 ‘왕과 비’ ‘허준’까지 성공을 거두니 방송국 간부들도 “이제 웬만한 소재로 사극을 만들어도 25%의 고정시청자는 확보될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더라구요.-사극집필이 현대물보다 몇배 힘들다고 하던데, 무슨 계기가 있었나요. ▲최완규= 저는 방송국의 요구로 시작했습니다.

‘언젠가는 해야 한다’는 생각은 갖고 있었지만 아직 그 시점은 아니라고 봤는데. 이리저리 피하다 결국 발목을 잡히고 말았죠.

언어나 고증문제 등 사극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허준’은 이은성의 ‘동의보감’이라는 원작이 있었고 또 이병훈 PD같은 베테랑을 만나 그 부분은 의외로 쉽게 해결됐습니다.

이제 겨우 ‘허준’을 통해서 앞으로 하게 될 사극의 맛을 봤다는 정도입니다. ▲이환경= 사극에 매료되는 계기가 있었어요. 1986년부터 3년간 ‘전설의 고향’을 썼는데 하다보니까 ‘야사(野史)’가 참 재미있더라구요.

그래서 닥치는 대로 역사문헌과 자료를 탐독했습니다. 파고들다보니까 역사라는 게 이야기 소재를 찾는 작가들에게는 마치 금광맥같은 것이더라구요.

조상의 얼과 멋이 들어있고, 수많은 갈등구조가 있고, 거기다 작가의 세계관까지 덧씌울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소재가 어디있습니까.

그래서 힘들어도 사극을 합니다

▲최완규= 정말 고생이지요. 처음에 사극을 준비할 때 이병훈PD가 백과사전 두께의 자료를 들고 왔어요.

그게 뭐냐고 하니까 지금까지 사극을 하면서 학자들이나 문중이 문제를 제기한 내용이니까 봐두라고 하더군요.

‘특히 드라마에서 악당으로 표현되는 사람에 대해서는 그 근거가 되는 문헌을 꼭 확보해 두라’는 말도 했어요.

사극을 쓰려면 작가관이나 역사관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항의에 맞설 수 있을 만큼의 철저한 준비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환경= ‘태조왕건’은 준비작업에만 3년 걸렸어요. 고려사에 대한 자료는 북한쪽에 더 많다는 얘기를 듣고 옌벤(延邊)까지 가서 조선족을 통해 자료를 구해 읽기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준비해도 쓰다보면 항의가 많습니다. 문중의 체면이 걸려 있으니 잘 써달라며 돈 싸들고 찾아오는 사람도 있고요.

사관이 없고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면 그런 경우에 슬쩍 펜을 돌려 적당히 타협해 버리겠죠. 그런 사람은 절대 사극을 쓰면 안됩니다.-그래도 역사왜곡 시비가 끊이질 않는데요. ▲이환경= 이런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답답해요. 한마디로 역사왜곡은 없습니다.

사극은 역사적 사실에 작가적 상상력을 더 해 만들어집니다. ‘태조왕건’에서 궁예의 부인인 강비같은 인물은 작가적 상상력으로 태어난 가공의 인물이죠.

이런 가공은 역사를 재미있게 전달하는 장치로 만들어 내는 것이지 사실 자체를 뒤집는다거나 하는 일은 없어요. 이걸 두고 왜곡이라고 한다면 유감입니다.

또 ‘사서(史書)에는 궁예가 죽일 놈으로 나오는데 왜 좋은 사람으로 그리느냐’는 문제제기 같은 것도 있는데 역사는 기본적으로 승리자의 기록 아닙니까.

왕건이 정권을 잡았으니 그 후의 기록에는 정권탈취의 정당성을 위해서라도 궁예를 못된 놈으로 기록했겠죠. 그 앞대에는 궁예를 좋은 사람으로 기록한 문헌도 있습니다.

이는 왜곡이라기보다는 역사를 보는 견해 차이가 아닐까요.▲최완규= ‘허준’같은 경우 언론에서 역사왜곡이라고 지적했던 부분이 몇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허준이 과거를 통해 내의원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천거를 통해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부분은 알면서도 그냥 원작대로 갔어요. 이은성의 소설에서 이 부분이 너무 재미있어서 그런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원작을 따랐습니다.

하지만 유의태가 허준보다 100년 뒤의 인물이라는 지적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유의태’라는 이름만 같았지 동일인물이 아니거든요.

허준이 그만한 의술을 익히기까지는 훌륭한 스승이 있었을 거라는 가정을 하고 그 전형으로 유의태라는 인물을 설정한 것뿐입니다.

이 정도의 설정은 이해해주는 관용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허준’을 초등학생들까지 좋아하는 것을 보고 사극이 역사교과서 역할도 하겠구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전국민을 상대로 1주일에 2시간씩 역사교육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역사적 사실과 작가적 상상력을 어떻게 배합하느냐가 앞으로의 숙제가 됐습니다. -두분은 모두 대학을 나오지 않고도 최고의 작가가 됐습니다. ▲이환경= 대학을 안나왔다고 부끄러워 해본 적도 없고, 초등학교 졸업학력으로 이 정도 성공했다고 특별히 자랑스러울 것도 없어요. 경쟁사회인데 어차피‘센 놈’이 이기는 거 아니예요.

대학에서 배운 게 드라마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어요. 나는 드라마에 필요한 것을 밑바닥인생에서 배웠어요.

설움을 당해본 사람만이 설움을 제대로 그릴 줄 알는 것 아닙니까. 방송국PD의 6할이상이 서울대 출신인데 어디 유명한 드라마 연출가중에 그 대학 출신 본 적 있습니까. ▲최완규= 작가라는 직업이 괜찮은 이유 중의 하나가 내가 어디서 어떤 삶을 살아도 그것이 모두 내 글에 수렴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공부 안하고 사고치고 돌아다녔던 일들을 그렇게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런 일들이 언젠가는 내 작품에서 표현될테니까요.-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 주십시요. ▲이환경= KBS는 대하드라마에 강한 애착을 갖고 있어요. 처음으로 제가 고려사를 시작했는데 저보고 뚜껑을 열었으니까 앞으로 10년 동안 고려사 전체를 드라마로 써보라고 합니다.

자료수집도 힘들고 역사학자들과 씨름하는 일도 피곤하고 제가 끝까지 해낼 수 있을까 걱정됩니다.

빨리 좋은 후배 작가들이 성장해 제 뒤를 이어줬으면 좋겠습니다.▲최완규= 대하드라마를 쓰는 작업이 예전에는 참 외로운 작업이었을 겁니다.

의미있는 일임에도 시청자들로부터는 외면당했으니까요. 그러나 이제는 의미와 재미에다 일정한 시청률까지 누릴 수 있으니 한번 전념해 볼만한 장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로서의 미래를 사극에 맞출 것인지는 아직 고민중이지만 앞으로 작가적 역량이 쌓이면 대하드라마를 써보고 싶습니다.

●이환경(李煥慶)

1950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가난때문에 주안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건설현장, 공장 등을 누비며 안해본 일이 없다. 1981년 KBS TV문학관 ‘갯바람’으로 데뷔, ‘무풍지대’‘훠이훠이’등 주로 선이 굵은 남성풍의 작품을 써왔다. 그 후 역사의 이면을 다룬 ‘파천무’‘비검’을 집필하다 1996년말 ‘용의 눈물’로 사극 붐의 시작을 알렸다.

●최완규(崔完圭)

1964년 경북 울진에서 태어났다. 인천대 영문과 1년을 중퇴하고 10년간 공단을 전전하다 드라마 극본 공모에 당선돼 작가가 됐다. 1994년 MBC ‘종합병원’으로 인기작가 반열에 들어섰고 ‘야망의 전설’‘간이역’ 등을 거쳐 올해 ‘허준’으로 절정의 기량을 과시했다. 젊은 작가로는 드물게 치밀한 취재를 바탕으로 작품을 쓴다는 평가이다.

유성식기자

ssyoo@hk.co.kr

김기철기자

kim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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