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을 제패한 황영조는 고교시절부터 훈련일지를 썼다. 그는 일지의 맨 마지막에 꼭 '세계 제패'라는 단어를 썼는데 선배들은 그런 그에게 '한국에서나 일등하라'며 핀잔을 주었다고 한다.그러나 황영조가 당시 한국선수에게 불가능해 보였던 10분벽을 깨고 올림픽서 우승한 뒤 선수들의 인식은 확 달라졌다. '영조가 하는데 나도 못할까'라는 생각이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황영조와 함께 매일 같이 달리고 훈련했기에 자기도 모르게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다. 김완기 이봉주 김이용 등이 줄이어 나타난 것은 황영조를 보고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기때문이다.
박세리의 미 여자프로골프 우승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 쾌거였다. 이후 김미현 박지은이 세계 골프계를 휩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박세리의 영향 덕이라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단언하건데 얼마전 이형택이 US오픈 테니스에서 16강에 오름으로써 한국테니스는 한 단계 높아졌다 할 수 있다.
앞으로 제2, 제3의 이형택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이처럼 우리 스포츠의 수준은 걸출한 한 선수에 의해 급속히 높아졌다. 그것은 어떤 한 선수가 세계 정상에 오름으로써 다른 선수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기때문이다.
축구가 아닌 다른 종목의 이야기를 꺼낸 것은 바로 자신감의 중요함때문이다. 우리 축구는 지금까지 월드컵이나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못냈다. 그나마 96년 애틀랜타올림픽때는 1승1무를 거두고 이탈리아와의 마지막 조예선 경기서 '비기면 된다'는 소극적인 태도로 경기한 결과 패해 8강진출에 실패한 일이 있다. 바로 자신감 부족때문이었다.
이번 시드니올림픽에 출전하는 한국축구대표팀이 지난 해 유럽전훈중 강호 체코에 4_1로 대승했을 때 체코감독은 공항까지 환송 나와 허정무감독의 손을 꼭 잡고 "당신팀은 올림픽에서 우승할 것이다"며 흥분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국내 전문가들도 한국의 8강진출은 가능하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막상 경기에 임해 자신감을 잃어 버리거나, 4년전 올림픽때처럼 소극전으로 나선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당부하건대 자신감을 갖자. 체코, 유고, 나이지리아 감독이 모두 칭찬했듯이 우리 대표팀의 실력은 자부할 만큼 좋다. 문제는 실전에서 얼마나 자신감을 갖느냐 하는 것이다. 유승근 us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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