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신탁이 고사(枯死) 위기에 빠졌다. 신상품 허용 등 정부가 내놓은 갖가지 유인책도 약효를 발휘하지 못한 채 올들어 은행 신탁계정 수탁고가 무려 30조원 가량이 줄어드는 등 ‘신탁의 몰락’은 대세로 굳어지고 있다.일부 은행은 신탁펀드의 마이너스 수익률을 만회하기 위해 초단타 매매 등 변칙적인 자산운용까지 서슴지않는 파행적인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7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8월말 현재 신탁 수탁고 총액은 88조7,600억원으로 지난해 연말(117조9,200억원)에 비해 무려 29조원 이상 감소했다.
이같은 추세라면 연말까지 50조원대의 자금이 신탁에서 이탈할 것이라는 게 금융계 관계자들의 전망이다.
은행 신탁이 이처럼 급속도로 몰락하게 된 것은 주식시장 침체, 자산운용능력 부족 등으로 수익률이 현저히 떨어진데서 비롯됐다.
현재 12개 시중·특수은행이 운영하고 있는 단위금전신탁은 182개. 이중 원금보전 조차 되지 않아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진 펀드가 무려 72개로 40%에 육박하는 ‘대기록’을 수립중이다.
특히 만기일이 향후 2개월 이내인 45개 펀드 중에서 19개가 원금을 까먹고 있어 고객들의 반발도 극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정부가 신탁 유인책으로 내놓은 대책들도 ‘실패작’으로 드러나고 있다. 연말까지 한시판매되는 단기금전신탁의 경우 판매 초기 ‘반짝 히트’를 쳤을 뿐 갈수록 인기가 시들해져 현재 은행권 전체 수탁고는 1조5,000억원 가량에 불과한 상태다.
새롭게 판매가 허용된 신개인연금, 신노후연금, 신근로자우대 등 3개 신탁상품도 모두 합쳐 지금까지 2,000억원 안팎의 자금을 끌어들이는데 그쳤다.
이처럼 신탁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으면서 만기를 며칠 앞두고 ‘고위험 고수익’ 초단타매매를 통해 수익률을 끌어올리는 파행적인 상황까지 연출되고 있다.
지난달 18일 만기가 된 신한은행의 ‘전환형 1호’가 대표적인 사례. 만기 10일전인 지난달 8일 기준가격이 853.55원이었던 이 펀드는 만기 기준가격이 1,000.83원으로 껑충 뛰었다.
시중은행 신탁팀 관계자는 “안정적인 운용을 해야 할 신탁자산을 초단타매매로 운용한다는 것 자체가 은행 신탁에 대한 고객들의 신뢰가 얼마나 떨어져있는 지를 방증하는 것”이라며 “비과세 혜택 등 정부측이 실효성있는 대책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영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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