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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달영 칼럼] 부끄러운 줄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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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달영 칼럼] 부끄러운 줄 알라

입력
2000.09.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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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수영(金洙暎·1921~1968)은 겨우 마흔여덟에 갔다. 그가 살아간 연대를 가리켜 “혼란과 궁핍과 억압의 시대였다”는 표현은 옳다.그의 ‘전집’은 시집 한 권, 산문집 한 권이 전부다. 그러나 그에 관한 평전이나 연구서는 켜켜이 쌓일 만큼 늘어나고, 그의 이름을 건 문학상은 그 정신의 부피가 결코 얇지 않다. 그는 이 시대의 전설이 되는 인물 가운데 하나다.

그는 지금 관에서 주관하는 ‘이달의 문화인물’로 기념되고 있지만,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를 이야기하자는 것은 아니다. 실은, 그가 40대에 쓴 어느 산문의 한 구석에 숨은 ‘수치감’이라는 단어가 다시 강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는 그의 힘으로 해결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해결이 불가능할 것같은 ‘세 가지 문제’를 피를 토하듯이 고백하는데, 그것이 죽음과 가난과 매명(賣名)이다.

죽음에 대한 구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다소 영성적인 명제나, 원고료를 벌기 위해 글을 써서 팔아야 하는 매문(賣文)과 매명의 인간적 고뇌는 그래도 보편적인 범주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가난에 대해서는 이렇게 썼다.

“가난의 구원. 길가에서 매일같이 만나는 신문 파는 불쌍한 아이들을 볼 때마다 느끼는 자책감에서 헤어날 길이 없다.

역사를 긴 눈으로 보라고 하지만, 그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볼 때마다 왜 저애들은 내 자식만큼도 행복하지 못한가 하는 막다른 수치감에서 헤어날 길이 없다. 나는 40여년 동안을 문자 그대로 피해 살기만 한 셈이다.”

그는 가난한 시인의 자식만큼도 행복하지 못하게 보이는 신문팔이 소년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에서 ‘막다른 수치감’으로 몸을 떨었다.

어른으로서 부끄럽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부끄럽고, 모든 일을 수동적으로 도망치듯 살아온 자신의 인생이 부끄럽다는 뜻이다.

부끄러움은 모든 도덕의 원천이라고 한다. 개인의 차원에서 그러할 뿐 아니라 사회공동체 안에서 더욱 그러하다. 노동하는 소년들을 보면서 자책하고 자괴하는 어른이 없다면 그 사회는 도덕적으로 건강할 수 없다.

굳이 가난의 ‘문제’일 것도 없다. 지금 우리 사회를 날이면 날마다 지지고 볶으면서 해결의 길이 보이지 않는, 그래서 온 국민의 정신건강을 심히 해치는 몇 ‘문제’가 동시대인들을 참으로 부끄럽게 하고 있다. 더구나 그 당사자인 일부 공인(公人)의 후안무치(厚顔無恥)한 행진은 너무 실망스럽다.

재벌기업의 사외이사로서 거액을 축재한 전력을 지닌 채, 또는 재벌기업의 ‘직원’을 겸업하여 과다한 급여를 받은 사실이 밝혀진 채 높은 공직에 올랐거나 오르려 한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부끄러운 일이고 또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하는 부당한 일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해외 출장길에서 빛나는 외교적 성과를 거둘 때마다, 그 빛을 바래게 하는 일이 안에서 벌어지는 불운이 있다고들 한다.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가 러시아·몽골 국빈방문 때 국내에서 온통 법석을 떤 옷로비 사건이다. 그는 귀국회견장에서 관련 공직자를 감싸는 듯한 이른바 ‘마녀사냥’론으로 지도자로서의 판단력까지 의심을 산 일이 있다. 그 뒤 그 사건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국민은 똑똑히 보았고, 잘 기억한다.

지금 검찰 수사가 진행중인 대출비리 사건도 자칫 옷로비 사건의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이 있다.

불행한 일이지만, 많은 국민의 시각은 이제까지 수없이 보아온 ‘권력형 비리’의 하나라는 데 일치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단 하나의 털끝이라도 의혹의 여지가 없어야 한다는 점이고, 관련된 공인들이 느껴야 하는 ‘막다른 수치감’이다. 국민 앞에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 한다. 부끄러움을 씻어낼 수 있도록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

‘얼굴이 붉어지는 동물은 사람뿐’이라고 한다. 수치(羞恥)는 시와 철학과 종교의 명제이지만, 오늘의 우리에겐 정치의 명제로서 절박하다.

역사상 유례없는 ‘세계 모든 정상의 회의’에 참석중인 김 대통령이 그곳에서 안고 돌아올 ‘빛’을 더욱 빛내기 위해서도, 또한 한가위에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 앉을 이 나라 백성들의 모든 화제가 조금은 상쾌한 것이 되게 하기 위해서도 정직하고 과감한 ‘문제’접근이 필요하다.

칼럼니스트

assisi6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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