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 위기에서 겨우 몸을 추스른 한국경제가 또 하나의 험난한 파도를 맞고 있다. 바로 ‘제3차 오일쇼크’조짐이다. 기름 한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로선 오일쇼크에 대해 ‘불가항력적’이란 점에서 그 파장은 다른 어떤 내부악재보다도 치명적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세계경제의 동반침체 오일쇼크의 폭발력은 특정 국가만이 아니라 전세계 모든 나라, 심지어 문제를 일으킨 산유국까지도 심각한 경제침체를 초래한다는 점이다.
IMF는 금년도 세계경제 성장률을 90년대이래 가장 높은 4.75%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대다수 연구기관들은 오일쇼크가 현재화한다면 내년 성장률은 1~2%대로 급락할 가능성이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세계 경제의 침체는 우리나라로선 수출시장의 위축을 의미하며, 수출의존도가 높은 국내경기가 급속히 냉각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특히 유가상승은 미국경제에 인플레 압력을 증대시키고 마침내 ‘경(硬)착륙’을 초래할 수도 있고, 간신히 회복단계에 들어간 일본경제를 다시 거꾸러뜨릴 수도 있어 미일 경제에 과잉의존되어 있는 우리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오일쇼크에 따른 세계경기 및 국내 실물경제의 침체는 금융시장에도 악재다. 원유가 상승에 따른 수입증가와 수출둔화는 경상수지 흑자기반을 무너뜨려 달러유출→환율상승→외국인자금이탈→증시침체의 악순환을 낳는다.
국내물가의 연쇄상승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유가가 배럴당 1달러 오를 경우 0.3%의 생산자물가를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정부는 에너지절약유도를 위해 ‘국제유가상승시 100% 국내가격 반영’방침을 밝히고 있어 30달러대 유가상태가 지속된다면 국내 휘발유값은 ℓ당 1,400원대 진입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 교통요금과 전기료, 공산품가격의 연쇄인상이 이어지고, 결국 경기침체속에 물가는 폭등하는 심각한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벌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70년대 1, 2차 오일쇼크때도 이미 우리나라는 마이너스 성장에 두자릿수 물가가 겹치는 상황을 경험한 바 있다.
긴축전환 가능성 정부의 현 정책방향은 성장, 물가, 국제수지를 모두 잡는 전략. 정부 당국자는 “성장과 물가중 하나를 포기해야하는 상황이라면 성장을 포기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1,2차 오일쇼크 초반처럼 섣부른 단기부양책과 인위적 유가안정책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을 가속화시켰던 정책적 오류는 범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결국 정부정책의 긴축전환 타이밍도 유가동향에 달려 있는 셈이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유가전망 여전히 어둡다
OPEC 추가증산여부 논의 100만배럴 이상돼야 '안정'
유가 전망은 여전히 어둡다. 최근 유가급등이 수요에 비해 공급량이 턱없이 달리는 데다 심리·투기요인까지 겹친 결과인 만큼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특단의 증산합의가 없는 한 해소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일단 전 세계는 10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리는 OPEC 정기총회에 실낱같은 기대를 걸고 있다. 추가증산이 없을 경우 4분기엔 하루 평균 80만배럴의 공급부족이 예상된다는 게 석유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만약 이 회의에서 하루 100만배럴 이상의 증산합의가 도출된다면 유가는 25달러 이하(두바이유 기준)로 안정될 전망이지만 가능성은 희박하다.
우선 물리적으로 회원국들의 증산여력이 달린다. OPEC 11개 회원국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를 제외한 대다수 국가가 생산능력 한도에 육박해 있기 때문이다. 국가별 공평비례 증산원칙에 따를 경우 대규모 증산합의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OPEC의 유가밴드(배럴당 22~28달러)에 따른 목표유가(25달러) 유지를 위해서도 100만배럴 이상 증산은 기대하기 힘들다.
당장 유가 폭락이 우려되고 이는 전 OPEC회원국의 희망과 상반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사우디를 제외한 이란 리비아 등 주요국 대부분이 완강하게 ‘50만배럴 이상 증산불가’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최근 유가전망 자료에서 OPEC 총회 증산합의 물량이 50만배럴일 가능성이 높다고 전제하고 “7월말 현재 OPEC 회원국의 실제 산유량이 목표량보다 26만배럴 가량 초과하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증산규모는 24만배럴에 불과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 경우 내년 2분기까지 배럴당(브렌트유 기준) 28~30달러 수준의 강세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한은은 전망했다.
석유공사의 전망은 다소 덜 비관적이다. OPEC가 미국등 소비국의 유가저항을 무마하고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50만~100만배럴 증산에 합의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경우 유가는 25달러선에서 안정될 수도 있다. 물론 국가간 불비례 증산을 회원국들이 양해할 경우에 한해서 가능한 시나리오다. 산업자원부는 OPEC국가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가 하루 250만배럴, 쿠웨이트가 30만배럴, 아랍에미리트가 25만배럴의 증산여력이 있다고 밝혔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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