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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기행] (39)공지영 장편소설 '봉순이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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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기행] (39)공지영 장편소설 '봉순이 언니'

입력
2000.09.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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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감고도 찾아갈 수 있을 것 같다"작가 공지영씨는 20년만에 찾는 '봉순이 언니'의 배경인 서울 서대문구 아현동을 가는 길에 말했다. 언젠가 우연히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다 보니 아현시장 윗동네만은 그대로더라는 것이다. 자신 있게 말했지만 아현시장을 지나 모자의원을 알아본 그에게 막상 1963년부터 7년이나 살았던 골목을 기억해 내는 것이 쉽지 않은 것 같았다. "여긴가, 이렇게 골목이 넓지 않았는데…"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 해도 사람의 기억이란 믿을 것이 못되는 모양이다.

"여기 맞아요." 골목에서 조금 들어가 있는 작은 집을 발견하자 작가는 탄성을 질렀다. 일부러 가꾼 것 같지 않은 마당 한 편엔 붓꽃이면 맨드라미가 아무렇게나 피어 있었고, 지붕은 비새지 말라고 '타마구(코르타르)'로 코팅한 검은 비닐이 쳐 있다. 동무 한명이 살았던 집이다. 작가의 집은 산등성이 쪽으로 한 집 건너편이다. 그 집은 붉은 벽돌의 연립주택으로 변했다. 그는 붉은 연립주택 대신 낡은 친구의 집이 제 집인냥 자리를 뜨지 못했다.

이제 1970년대의 기억을 간직한 몇 안되는 동네 중의 하나인 아현동은 마치 문명 전시장처런 느껴진다. 점점 사라지고 있는 구불구불한 골목길은 막힌듯 하다 다시 뚫리며 끊임없이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유혹의 공간이다.

유리병을 툭툭 깨뜨려 박아 놓은 대문이나 담장 위 방범유리는 예전의 그것처럼 고작 소주병인나 맥주명의 그것만이 아니라 형형색색의 유리를 박아 큐빅 장식처럼 보인다. 그 골목길을 티셔츠에 흰색, 검은 색 띠를 멘 아이들이 태권도장으로 달려간다. 골목은 아이들의 잰 발소리까지 흡수해 버려 더 적막해진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제는 서울 복판이 된 아현동이 2000년에 수십년 전의 풍경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재개발'때문이다. 아현1동 12통 일대는 재개발 예정지다. "15년전부터 말만 있지 제대로 추진되지도 않고, 주인은 딴 데서 살고 주로 세입자들이 산다" 9년째 통장을 하는 손진성(57)씨가 내력을 들려준다. 그는 310가구를 관리하는데 민방위 훈련통지서, 재산세 고지서 등을 일일이 주민을 찾아 배달한다.

언니 오빠 덕에 일찍 글을 읽게 된 소설 속 '짱아'는 성인용 주간지를 훔쳐 보기도 하는 되바라진 막내둥이였다.

그것은 '모던'바람에 몸을 싣고 부유하기 시작한 엄마, 유대감이 없던 언니와 오빠, 레이스 달린 원피스를 입고 양과자를 먹는 부잣집 딸에 적대감이 있는 동네 아이들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는 작은 몸부림이었다.

그 짱아에게 봉순은 사람에게 거는 희망과 좌절의 상징이었다. 아이즐은 "주인집 재수없는 기집애"라며 짱아를 따돌렸다. 짱아가 오빠와 언니 몫의 케이크를 모두 가져다 주는 대가로 겨우 술래잡기에 끼어 들었지만 그들은 계속 짱아만 술래를 시켰다. 모두 밥을 먹으러 간 적막한 동네에서 짱아는 계속 술래를 했다.

"짱아야, 너도 들어가 밥먹어" 짱아의 마음엔 누군가 이렇게 말해주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건절했다. 또한 바람이 나서 더 이상 짱아를 보살펴 주지 않는 봉순이 언니에 대한 분노도 한켠에 쌓여 있었다. 그러나 작고 적요한 고목길에 사는 작은 아이의 분노는 풀 곳이 마땅찮았다.

봉순이는 쉽게 사람을 믿었다. "그 사람에게선 운명적인 뭔가가 느껴진다."고 공동수돗간 느티나무 밑에서 밤마다 만난 세탁소집 '말대가리'를 애기할 때도, '돈가스'를 처음 먹는 홀애비를 만날 때도 그렇게 얘기했다. 그러나 희망에 속고 또 속는 봉순이 언니로부터 버림을 받는데, 그것은 '심리적 이유'의 체험이기도 했다.

둘은 모두 '딸들'이었다. 세상의 딸들은 태어날 때부터 일부분 버려진다. 육체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전에는 더 그랬다. 중학을 마친 딸들은 공장으로 보내졌고, 그보다 못배운 딸들은 식모가 되기도 했다. '솔거 노비의 마지막 형태' 혹은 '사회과학이 언급할 수 없는 마지막 직업' 이라고 사회학자들이 농을 하는 기묘한 직업인 '식모'는 버려 진 우리 딸들의 피난처이자 안식처, 그리고 노동착취의 현장이었다.

1980년대 들어 식모는 주거 공간을 달리하는 '파출부 형태로 개선되면서 '식모'의 정서적 공감도 끊어졌다. 그러나, 그렇다고, 대책없이 희망하고 여지없이 절망하는 딸들의 운명과 삶이 크게 달라진 것일까. 희망을 돛대 삼아 유랑인생을 산 봉순 언니는 이제 그것을 알고 있을까.

"봉순언니를 기억하면 막연한 죄책감이 든다. 봉순 언니가 남편이 죽고 나선 아이들을 훌륭히 키우며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고 그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언제나 속는 딸들의삶에 대한 서러움이었는지도 모른다. "신동네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에는 그리운이 배어 있었다. 대청 마루에 앉아 봉순이 언니가 하얗게 빤 이불 호청을 보는 과거에로의 회상, 그것은 평화로운 유년의 기억이기 때문이다.

● '봉순이 언니' 줄거리

나와 봉순이 언니가 살았던 곳은 채송화꽃 핀 서울의 한 귀퉁이 아현동 산동네다. 언니는 내게 자주 귀신 이야기를 해 주었다.

다음에 무슨 말이 나올지 알고 있었지만 그때마다 무서웠다. "짱아 네가 태어났을때 사과처럼 빨갰다"고 얘기하는 언니는 항상 내 옆에 있던 나의 '첫 사람'이었다. 색바랜 외투를 입고 미국 유학에서 귀국한 아버지가 외국인 회사에 취직을 하고 우리는 '주인 집'이 되어 아랫동네로 이사했다.

언니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엄마 오시면 금방 시장 갔다고 전하라"하고 밤에 일어나 보면 없어지기도 했다.

언니를 따라 나가 한밤중 공동수돗가에서 본 세탁소집 청년은 셔츠단추를 세개나 풀어헤친, 그리고 함부로 언니 머리를 쥐어 박는 사람 이었다.

봉순이 언니는 엄마가 "다이아반지가 없어졌다"며 업이네 아줌마와 소리소리 지른 다음날 사라졌다. 나는 미자 언니네가서 주간지 '감동 수기'도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햇살이 비치는 늦가을 어느날 언니는 살찐 모습으로 나타났다.

엄마는 다음날 아무렇지 않은 듯 배추를 다듬던 언니를 데리고 가서 수술시켰다.

"괜찮아 짱아, 다 괜찮다고" 언니는 말했다.

나는 여섯살이 되고 언니는 낯빛이 푸른 형부와 결혼했다. 화장한 언니의 모습은 그때가 가장 아름다웠지만 흰 드레스는 빗물에 얼룩졌다.

언니가 밤새 비명을 지르다 아들을 낳은지 보름 후 형부가 죽었다. 언니는 처음부터 형부의 병을 알고 있었다. "꼭 나을 거예요"라고 말하던 언니는 소복에 아이를 업고 나타났다.

엄마는 언니에게 이사 얘기를 하지 않았다. 엄마는 파출부를 쓰겠다고 했다. 그 후로 몇 번 언니를 보았지만 어색할 뿐이었다.

언니는 몇 남자들과 도망갔다 돌아왔다.

며칠 전, 전철에서 애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냄새난다"며 사람들이 피하던 50대 아줌마를 외면하고 말았다. 그 말을 엄마에게는 하지 않았다.

● 공지영(孔枝泳)약력

▲1963년 서울 출생 ▲연세대 불문과 졸업 ▲1988년 '창작과 비평'에 '동트는 새벽'으로 데뷔▲장편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1988년) '그리고 그들의 아름다운 시작'(1991년)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1993년) '고등어'(1994년) '착한 여자'(1997년) '봉순이 언니'(1998년) , 중편 '광기의 역사'(1994년)▲소설집 '인간에 대한 예의'(1994년) '그리고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1999년) 산문집 '상처없는 영혼'(199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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