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은 3일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의 조기해결을 위해 북한측과 ‘물밑접촉’을 더 많이 진행하겠다고 밝혔다.이미 폭넓은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이 문제에 관해서 이제 대통령이 직접 약속했으니 성과가 있으리라 기대한다.
그러나 대통령의 언급이 있은 그날은 63명의 비전향장기수들이 일부 단체들에 의해 ‘애국투사’가 되어 북한의 대대적 환영속에 송환되는 날이었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북한을 탈출한 국군포로 몇 명이 국정원에서 몇달째 ‘조사’받고 있음이 발표된 날이기도 하다.
북한은 비전향장기수들이 바로 북한체제의 정통성과 대남 혁명노선의 정당성을 대변해주기 때문에 거국적으로 환영한 데 비해, 우리는 ‘북한을 자극할까 봐서’ 제발로 찾아온 국군포로마저 조용히 ‘조사’만하고 있는 셈이 되어 버렸다.
이같은 우리정부의 태도는 그동안 비전향장기수들 송환을 담당하고 끈질기게 요구해온 북한측 자세와는 차이가 난다.
우리 정부는 ‘법적으로 국군포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황당한 발언부터 시작하여 이들을 ‘넓은 의미의 이산가족 범위’로 다루어야 한다는 모호한 표현에 이르기까지 실로 이해할 수 없는 태도로 일관해 왔다.
그런 결과 ‘6·15남북공동선언’에 비전향장기수 송환은 명문화하면서 정작 국군포로 납북자문제는 거론조차 못했다.
정부는 이 모두가 남북화해와 협력시대를 열기위해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이 역시 분단속에 내포된 ‘적이자 동시에 동족’이라는 엄연한 상황의 이중성을 간과한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우선 개념부터 분명히 해보자. 비전향장기수들은 거의 빨치산과 간첩들로서 우리체제를 전복시키기 위해 침투해 활동하다 붙잡힌 사람들인데 비해 국군포로는 바로 북한의 침략에 대항하여 싸우다 잡힌 체제수호자들이다.
따라서 국군포로는 냉전의 유산으로 치부될 과거지사가 아니라 현존하는 우리의 국방목표와 군의 사명에 관한 살아있는 현실문제인 것이다.
한마디로 국가관과 안보관 유지의 근본에 관한 당장의 현안문제라는 뜻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 문제가 소위 ‘넓은 의미의 이산가족’ 범주에 들어가야 하는가.
납북자들도 북에 강제로 끌려가 억류되어 있는 우리 국민이기 때문에 우리가 당연히 일관된 송환요청을 했어야 했다.
통일된 서독은 인권문제에 관한 한 대동독 경협과 철저히 연계한 상호주의를 적용했으며, 작금 일본은 일본인 납치문제를 대북 수교협상에서 최대현안으로 삼고 있고 미국은 6·25때 실종된 미군유해 발굴·송환을 위해 수백만달러씩을 쓰고 있는 상황이다.
협상전략 차원에서도 우리는 첫단추부터 잘못 끼운 것 같다. 과거 남북대화의 경험이나 동·서독간의 협상사례 및 미·소 군축협상 경우에서 보듯이 선전·선동 심리전에 능한 공산권 국가와의 협상은 반드시 처음부터 의제의 선정과 우선순위의 획정을 분명히 해야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
그렇지 않고 모호하고 추상적인 선언이나 합의로 막연히 상대의 선의를 기대한 경우는 예외없이 그들의 전략에 끌려다니곤 했다.
따라서 국군포로및 납북자 문제는 ‘물밑접촉’이 아니라 당당하게 비전향장기수와 맞바꾸었어야 했다. 나아가 적십자회담에서 이산가족문제로 다룰 것이 아니라 장관급회담의 주의제가 되어야 옳다.
기왕에 남북정상회담까지 한 마당에 남북관계 주요현안과 추진일정을 투명하게 밝히고 대내외에 공론화시킬수록 우리에게 명분과 실리가 큰 법이다. 김대중정부의 포용정책을 ‘수용’한 김정일의 ‘통큰 정치’ 추이를 오직 지켜볼 뿐이다.
/남주홍 경기대 통일안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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