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내내 신임 총재 추대문제로 뒤숭숭했던 한국기원이 9월 들어 다시 시끄러워질 것 같다.한국 바둑계의 정신적 수장 격인 조남철 9단은 1일 ‘한국기원 명예 이사장’ 자격으로 프로기사 전원에게 서한을 발송, 민주당 한화갑 최고위원을 신임총재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에 적극 동참해달라고 촉구했다. 조 명예이사장은 서한에서 “한국기원 일각에서 ‘원로기사들의 신임 총재 추대작업이 정상적인 절차를 밟은 것이 아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과거 이후락, 김우중 등 전임 총재를 추대하던 관례에 따른 것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앞으로 이른 시일 내에 이사회를 소집,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지난달 13일 조9단을 비롯한 일부 원로기사들이 서울시내 모호텔에서 한의원을 면담, 총재 추대 수락의사를 확인하고 이를 적극 추진키로 함으로써 비롯된 한국기원 내부의 갈등이 재연될 조짐이다.
총재 추대를 둘러싼 갈등은 1983년부터 16년간 총재직을 맡았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작년 말 대우사태와 관련, 갑작스레 사퇴함으로써 비롯됐다. 당시 바둑계 일각에서는 새 총재를 물색하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오랫동안 바둑계 발전에 크게 기여한 전임 총재가 물러나자마자 후임자 영입을 서두르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는 의견이 우세, 현재현 이사장의 임기가 끝나는 내년 초에 함께 논의키로 했던 것. 그런데 지난 8월 중순 갑자기 원로기사들이 독자적으로 신임총재 추대계획을 발표하자 기원측은 “일부 기사들의 의견일 뿐, 바둑계 총의를 수렴했다고 볼 수 없다”며 일축, 서로간의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특히 이번 총재 추대 움직임이 기원 집행부와 전혀 사전 상의없이 은밀히 추진돼왔으며 추대모임이 있던 날이 마침 일요일 오후인데다 공교롭게도 현재현 이사장과 정동식 사무총장 등 집행부 임원들이 전원 외국 출장 중이어서 일부러 집행부를 따돌리려 했던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게다가 이번 사태는 기원 내부의 해묵은 분란과도 맥이 닿아 있어 더욱 혼선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국기원 내에서는 최근 수년 동안 이른바 ‘주류’와 ‘비주류’ 간의 알력다툼이 심했고, 급기야 지난해에는 사무총장 및 이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일부 기사들이 단식투쟁까지 벌이는 파행이 연출되기도 했다. 따라서 바둑계 일각에서는 이번의 신임 총재 추대 움직임 역시 집행부 흔들기의 하나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과연 결말이 어떻게 날지는 모르겠지만 지난 50여년 간 취미단체로 비교적 순수성을 유지해왔던 한국기원마저 어째 슬슬 정치판을 닮아가는 듯 해서 안타깝다. /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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