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간 내전으로 얼룩졌던 ‘중동의 화약고’ 레바논에 변혁의 훈풍이 불고 있다. 지난 5월 점령 22년만에 남부 레바논에서 이스라엘군이 철수한 이후 처음 실시된 최근 레바논 총선은 탈(脫) 외세화 바람이 정치민주화로 전이되는 과정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남부 레바논에서는 1972년 이후 30여년만에 처음 치러지는 투표권 행사라는 의미와 함께 레바논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하페즈_알 아사드 전 시리아 대통령이 사망한 이후의 총선이라는 점에서 ‘선거혁명’으로까지 평가받는 분위기다.
총선 전체 의석 128석중 65석을 놓고 3일 치러진 총선 제2지역 투표에서 라피크 하리리 전 총리(1992~1998년)가 주도하는 야당연합이 에밀 라후드 현 대통령과 살림 호스 총리가 이끄는 집권당에 압승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특히 19석이 배정된 수도 베이루트는 호스 총리를 비롯, 3명의 각료가 낙선하는 이변속에 하리리측 후보가 전 선거구를 석권했다. 함께 치러진 남부지역, 동부 베카지역에서도 야권인사들이 압승을 거두고 있다.
지난달 27일 63석을 놓고 중·북부지역에서 치러진 총선 제1지역 투표에서도 야당연합이 선전한 것으로 나타나, 레바논의 악명높은 ‘외세정치’의 종말이 현실화 할 가능성이 커졌다. 벌써부터 ‘라후드 대통령_하리리 총리’의 동거정부가 출현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돌고 있다.
그러나 시리아에 기반을 둔 동일한 정치배경에도 불구, 선거기간 내내 적대적이었던 둘 사이의 관계로 미뤄 시리아 정부의 조율이 차기 정부 구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남부지역에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무력투쟁을 주도해 온 아말민병대와 이란이 지원하는 시아파 헤즈볼라가 연합, 23개 의석 전부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번 총선의 야당 승리에는 레바논을 종교적으로 양분하고 있는 기독교·회교의 연합전선 구축과 좌·우익을 아우르는 범 야권 통합이 큰 힘이 됐다.
특히 1978년 이스라엘의 남부 레바논 점령을 명분으로 레바논에 진주한 시리아군에 대한 비판여론과 집권당의 경제 실정(失政)이 집중 부각되면서 야권을 고무시켰다.
정치·종교 역학구도 한때 아랍권에서 가장 견고한 민주주의를 자랑했던 레바논이 중동분쟁의 대리 전장터로 전락한 것은 1970년대 이스라엘의 남부 레바논 점령에 대한 대응조치로 시리아군이 진주하면서부터.
회교도와 기독교간 종파 갈등으로 혼란을 겪던 레바논은 외국 군대의 주둔이 겹치면서 걷잡을 수 없는 내분에 빠졌다. 현재까지 18개 종파가 정치 권력에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이스라엘이 철수한 이후에도 3만명에 달하는 시리아군이 레바논 내정을 사실상 좌지우지하고 있다.
30만명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난민도 정정불안의 한 요인이다. 종교간 권력분점은 레바논 법률이 종파간 의석수를 규정해 놓을 만큼 뿌리가 깊다. 1932년 인구센서스에 근거한 이 규정에 따라 시아파는 128개 의석의 22%인 28석을, 기독교파는 48%인 61석을 보장받고 있다.
그러나 현재 420만 인구중 시아파 교도는 40%를 넘는 반면, 기독교도는 30%가 채 안되는 것으로 추산돼 그나마 형평성을 잃은 의석배분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황유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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