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을 꼭 보고 싶었어요"서울 사간동의 한 화랑에서 만난 배우 이영애는 따뜻하고 미니멀한 추상화를 보며 즐거워했다.
격렬한 추상화보다 가라앉은 분위기의 추상화를 좋아하는 것을 보면, 또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는다" 고 말하는 것을 보면 그는 '식물성'에 가깝다는 느낌이 든다.
"등장 인물이 많은데다 워낙 화려하게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이라 차라리 그렇게 튀지 않기를 잘했다 싶어요"
이영애는 가장 약점으로 지적되는 그 지점을 딛고 성공을 거둘 확률이 높아진 듯하다.
남북공동경비구역에서 일어난 의문의 살인 사건을 다룬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를 둘러싸고 벌써부터 "제2의 '쉬리 신드롬'을 몰고올 것" 이라는 예상이 강하다.
이런 영화에 출연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배우는 몸값이 더럭 올라가게 마련이지만, 이영애는 비로소 이 영화를 통해 '배우 이영애'라는 소리를 듣게 됐다.
이병헌이나 송강호가 더 큰 박수를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이영애의 연기 변신도 주목맏아 마땅하다.
중립국 스위스의 소령 소피 장은 북한군 살인혐의를 쓰고 입을 굳게 다문 이수혁(이병헌)에게 접근할 때는 누나처럼 다정하지만 남성식(김태우)를 추궁하다 결국 자살을 시도케 할 만큼 야멸차다.
그는 남북 젊은이의 '밀회'의 비밀을 캐내는 정보 장교가 갖추어야 할 날카로움과 정체성의 고민을 안은 한국 여성으로의 고민을 한 캐릭터 안에서 소화했다.
눈빛은 강렬해 졌으며, 구체적으로는 대사 전달력이 매우 높아졌다. "입에 볼펜을 물고 발음 연습을 했느냐" 는 유쾌하지 않을 질문에 "그 정도로 발음이 나쁘지는 않아요" 라고 웃음으로 답했다.
"사람들은 자꾸 어떻게 연습했느냐고 묻는데 결정적인 것은 마음 가짐인 것 같아요. 그간 7년 연기를 했고, 앞으로 하루 이틀 할 것도 아니고. 그러다 보니 책임감도 생기고, 껍질을 벗어야 한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정열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 뜨는 듯한 대사와 그저 맑기만한 눈빛을 치유한 것은 정열과 집중력이었다.
원작에선 소피가 여자가 아니라 남자였다. 흥행을 의식한 탓이겠지만 당초 소피 역은 엉뚱하고 유머러스한 성격의 인물로 묘사됐었다.
"그렇게 곁가지를 치다가는 초점이 흐려질 것이란 우려가 나왔어요. 물론 정열적인 모습을 보이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요" 무조건 튀는 것 보단 자연스럽게 영화 안으로 숨어들 줄도 안다.
CF 스타로 그녀는 미덕이 아주 많다. 어느 사진작가는 "그는 본능적으로 카메라를 아는 여자" 라고 말했다.
CF카피인 '산소 같은 여자'가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1993년 '댁의 남편은 어떠십니까'로 시작한 탤런트 생활. '내가 사는 이유' '동기간' '불꽃' 등에서 다양한 연기를 펼쳤지만 사실 연기자로서 그는 '2% 부족'해 보였다.
1997년 영화 데뷔작 '인샬라'는 회상하기도 싫을지 모른다. 북한군 장교와 사랑에 빠지는 역이었는데 그녀는 ' CF 스타는 영화 백전백패'라는 영화가 속설을 깨뜨리지 못했다.
"과정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모로코에서 2개월간 촬영하면서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 알았거든요" 에티오피아에서의 기아 봉사 활동도 내면을 성숙시킨 시간이었다.
이번 영화로 그녀는 심은하, 전도연과 경쟁하게 될 것이다. 대답은 의외였다.
"영화 보다 훌륭한 드라마도 많아요. 중요한 것은 장르가 아니라 연기 자체죠" "이영애가 연기 잘했다"는 칭찬이 아직 내면에 충분히 스미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가슴에 가볍지 않은 중심이 있는 연기자 같다.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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