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석자:아브라함 프로아(파리10대 경제학과 교수)
참석자
:
베르너 파샤(독일 뒤스버그대 교수)
사회
:김세원(한국경제학회장·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통일비용 국제지원 도출 필수"
‘남북통일, 경제적 현실과 환상을 혼동하지 말고 추진하라.’
2일 서울대 호암관에서 한국일보 주관으로 열린 ‘변혁기의 한국경제- 해외 석학 좌담’에서 참석자들은 “최근 한반도에 이산가족 상봉, 경협 확대 등 획기적인 일들이 펼쳐지면서 남북한이 ‘통일의 꿈’에 부풀어있으나 통일정책은 냉엄한 남북한 경제적 상황과 치밀한 미래 청사진을 바탕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것을 망각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석학들은 특히 한국이 통일 비용 조달을 위해 다각적인 차원에서 국제적 지원을 이끌어내는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김세원(金世源·한국경제학회장)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사회로 진행된 이날 대담에는 아브라함 프로아 교수(파리10대 경제학과)와 베르너 파샤 교수(독일 뒤스버그대)가 참여했다.
두 학자는 한국경제학회가 주최한 ‘글로벌 경제 하의 아시아와 유럽’국제심포지엄(1~2일)에 참석차 내한했다.
아브라함 프로아 교수는 유럽에서 손꼽히는 거시경제 이론가로 지난해부터 프랑스경제학회를 이끌고 있다. 베르너 파샤 교수는 일본과 한국 문제에 정통한 유럽의 아시아전문가로 현재 독일아시아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다.
▷김세원 교수 먼 길 무릅쓰고 방한해 주신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최근 한반도에는 `남북 화합’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올 6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한국의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을 만난 이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문화 전반에서 화해와 협력 방안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통일을 경험한 독일의 학자 입장에서 어떻게 보시는지요.
○베르너 파샤 교수 냉전지대로 남을 것만 같았던 한반도가 ‘해빙무드’에 접어들고 있는 것을 지켜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한 마디로 남북한 긴장완화는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물결이라고 봅니다. 다만 남북한이 최종 목적지로 삼고 있는 ‘통일’에 이르려면 매우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1990년 7월 1일 통일을 이룬 독일은 10년간 1조마르크의 재정을 투입했지만 아직도 ‘통일 부작용 신드롬’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김 교수 독일은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올 1분기 3.4%에 이어 2분기에도 3.1% 증가하는 등 통일 이후 가장 높은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 실업자수가 감소하는 등 본격적인 ‘통일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는데요. 무엇이 문제입니까.
○파샤 교수 외부에서는 지표상으로 나타난 통계만을 보고 독일이 이제 성장가도에 진입한게 아니냐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양 지역간 실업률 격차가 8~9%에 이르는 등 불균형이 심각한 상태입니다. 이같은 실업률 격차는 독일이 통일을 추진할 당시 별로 염두에 두지 않았던 사항입니다. 공산주의 체제에 익숙한 동독지역 주민들이 자본주의 체제로 ‘정신적 전환’을 하기에는 10년의 세월도 부족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 교수 한국 정부는 통일 비용을 어떻게 조달하느냐의 문제를 놓고 부심하고 있습니다. 효율적으로 통일 비용을 조달할 방안이 있을까요.
◇아브라함 프로아 교수 통일을 위해서는 북한의 경제력 향상이 급선무라고 생각합니다. 국민소득이 20배나 차이나는 상태에서 통일을 이룬다면 두 지역 모두 엄청난 혼동을 겪을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북한의 경제력을 끌어올린다는 것은 한국 정부에게 엄청난 부담이 될 것입니다. 독일의 경우 주변 국가의 지원을 필요로 하지 않았지만 독일보다 경제적으로 뒤떨어진 한국으로서는 국제적 차원의 원조를 구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김 교수 남북한 통일이 이뤄졌을 때 북한 주민이 일시에 남한으로 몰려오는 것을 어떻게 차단하느냐도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독일의 경우 어떠했는지요.
○파샤 교수 독일 정부는 ‘동독 주민 엑소더스’현상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 중 하나로 동독 1마르크와 서독 1마르크의 가치를 동일하게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시행 결과 동독의 대외 경쟁력이 75%나 감소하는 등 동독 경제를 붕괴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한반도에서도 통일이 닥치면 ‘북한 주민 대이동’현상을 예상할 수 있으며, 한국은 이 문제에 관해 현실적이고 치밀한 준비 작업을 펴야 할 것입니다.
▷김 교수 이제 한국 경제문제에 관해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한국은 1997년 경제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경제 개혁과 구조조정을 추진해왔습니다. 그 결과 지난해 하반기부터 가시적인 성과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국 경제를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파샤 교수 일본과 한국을 비교할 때, 한국은 일본보다 자국의 문제점들을 풀어가는데 있어 훨씬 많은 진전을 거뒀다고 봅니다. 하지만 개혁작업은 보다 강력하게 계속돼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한국은 아직도 정부의 역할에 구조적인 변화가 오지 않았습니다. ‘관치’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지요.
▷김 교수 한국 정부가 나름대로 강도높은 개혁작업을 펴왔는데, ‘관치’가 계속되고 있다는 말씀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겠습니까.
○파샤 교수 아직 시장이 경제를 책임지고 정부가 최소한의 역할 만을 맡는 ‘선진형’단계에까지 도달하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시장 자체도 합리적 경제질서에 맞도록 성숙돼야 하겠지요. 개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인식이 확산돼야 합니다.
▷김 교수 국제경제는 어떻게 돌아갑니까. 새 밀레니엄과 함께 ‘신경제(New Economy)’부상, 디지털혁명, 유럽연합(EU)의 경제 회복등 경제사를 다시 써야 할 만큼 중대한 변화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요즘의 세계경제를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프로아 교수 먼저 짚고 넘어갈 것은 최근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디지털혁명이 미국에서는 90년대 초반 시작됐다는 것입니다. 80년대 미국의 생산성은 매우 낮은 형편이었지만 최근 들어 놀라울 정도로 생산성이 향상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물가는 매우 안정돼있습니다. 미국의 이같은 신경제효과(고성장-저물가)는 디지털혁명이 역할을 했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김 교수 미국의 신경제를 이상적인 경제구조로 본다는 말씀이라고 받아들여도 됩니까.
◇프로아 교수 일단은 그런 편입니다. 물론 미국의 경제가 완전히 탄탄한 기반에 올라섰다고 믿지는 않습니다. 월스트리트의 주식 붐은 더 많은 소비를 유발하기에 이르렀고 ‘주식 거품’이 빠질 경우 큰 혼란이 야기될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김 교수 ‘팍스 아메리카’에 대항해 최근 유럽 경제가 급성장하고 있는데 유럽 경제의 특징은 어떤 것입니까. 또 유럽의 자본시장은 어떤지요.
◇프로아 교수 프랑스를 중심으로 말씀드리죠. 프랑스의 실업률은 3년 전 13.3%에서 최근 10%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프랑스 실업률의 하락은 미국처럼 기술발전이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유로화의 출범도 실업률 감소에 기여했습니다. 유로화의 출범은 여러 국가 화폐를 고정환율로 묶어 안정성을 보장해주게 됐습니다. 특히 유로화가 약세를 보이는 바람에 수출이 늘어 실물경제 상황을 호전시켰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파샤 교수 유럽 각국은 서로 상이한 자본, 노동력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독일과 프랑스도 여러 측면에서 다릅니다.
‘유럽의 다양성’이 유럽 경제성장의 원동력이라고 봅니다. 지난주 핀란드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핀란드는 현재 국가 전체가 노키아라는 휴대폰 생산업체에 의해 주도되고 있더군요. 대단한 성공입디다. 핀란드는 인구 400만명에 불과한 작은 나라지만 자국의 교육체계를 근대화시키는데 성공한 것이지요.
▷김 교수 아시아 쪽은 어떻습니까. 경제학자들은 그동안 미국·유럽과 함께 아시아를 ‘제3의 성장축(Groth Pole)’으로 보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이후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사정은 매우 나빠졌습니다. 이에따라 한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이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는데요.
○파샤 교수 아시아 경제 위기 이후 나타난 현상들 중 주목되는 것은 아시아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지나치게 미국과 EU경제에 의존했다는 것입니다. 아시아 국가들은 경제회복, 즉 자국의 경제성장과 구조조정을 위해 미국및 EU로의 수출에 크게 의존했습니다. 아시아경제 독립성보다는 의존성을 심화시켰다는 것이지요. 이것은 앞으로 아시아경제가 부흥하는데 큰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프로아 교수 아시아에 유럽과 같은 다양성이 있다는 것은 희망적인 요소라고 봅니다. ‘아시아의 다양성’은 장차 아시아는 물론 세계 경제에 큰 활력소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파샤 교수 아시아에서 중국 경제의 미래에 대해서는 비관적입니다. 중국이 WTO 가입과 함께 외국시장 접근만을 추구하고 자국에 부여되는 의무는 이행치 않으려 할 가능성이 높고, 이 경우 아시아경제는 더욱 불안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일본은 투자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낙관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으나 정치적 구조가 아직도 경제 현실에 너무 둔감한 것 같습니다. 현 정부가 실현하려는 신재정프로그램은 오히려 구조조정을 저해할 수 있다고 봅니다.
▷김 교수 긴 시간 좋은 말씀 주신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박정규기자
j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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