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준비 잘 돼갑니까”2002년월드컵축구대회조직위원회 관계자들은 이런 질문을 자주 받곤 하는데 그때마다 곤혹스러움을 떨치지 못한다.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은 대개 월드컵 대회의 성공을 위해 총력체제로 준비하고 있는 일본을 둘러본 사람들로, 이 질문 속에는 ‘이래 가지고 우리나라가 월드컵을 제대로 치를 수나 있겠느냐’는 빈정거림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그때마다 조직위 관계자들은 우리 나라의 월드컵 준비가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다며 구구하게 설명하면서도 속으로는 겁이 덜컥 난다고 털어놓는다.
설명을 들어보면 겁낼 만도 하다. 단독으로 월드컵을 개최하면 다소 모자람이 있고 빈틈이 있어도 경기 열기 속에 파묻히기 쉬운데 공동 개최하는 대회라 흠이나 실수가 그대로 일본과 비교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 수준에서 월드컵이 치러진다면 우리 나라는 허점 투성이, 문제점 투성이의 나라로 부각되고 상대적으로 일본의 장점들은 더욱 돋보일 게 분명하다는 것이다.
프랑스가 1998년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른 비결과 방법을 배우기 위해 프랑스를 찾은 한 관계자는 프랑스 현지관리로부터 부끄러운 얘기를 들었다.
“한국에서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고위 인사들이 매일이다시피 찾아오지만 뭣 하러 오는지 모르겠다.
일본 사람들은 며칠씩 머무르며 차근차근 자료를 모으고 당시 월드컵에 관여했던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귀중한 교훈을 얻는데 한국사람들은 반나절 휘휘 둘러보곤 기념사진을 찍고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 프랑스인의 눈은 ‘귀중한 외화를 들여 출장 나온 사람들이 이 모양이니 국내에서의 준비상황이야 오죽 하겠느냐’고 말하는 듯했다고 털어놨다.
사실 월드컵 경기 자체의 준비는 크게 걱정할 정도가 아니다. 경기장 건설공정은 일본보다 좀 느리지만 계획된 공정대로 진행되고 있다.
일본은 월드컵개최 결정 전에 착공되거나 설계된 경기장이 많아 시설 면에서는 오히려 한국의 경기장이 더 첨단적인 최고의 시설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 동안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한 FIFA의 관계자는 “역대 어느 대회의 경기장보다 훌륭하다. 한꺼번에 10개의 최첨단 경기장에서 월드컵을 치르는 기회는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라고까지 말할 정도다.
우리가 정말 걱정하는 것은 월드컵 경기가 아니다. 교통, 관광, 숙박, 환경, 자원봉사 등 경기 외적인 분야로 큰 돈은 안 들지만 쉽게 나아지지 않고 있는 것들이다.
그러면서도 이 분야들은 일본과 가장 잘 대비돼 부정적인 부분은 그대로 드러나고 만다. 사람과 사람이 부딪히는 곳에서 모든 문제가 생기기 마련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곳곳에서 사람과 사람이 부딪히게 돼있다.
대책없는 교통질서, 바가지 상혼, 무뚝뚝한 시민, 불친절하기 짝이 없는 안내표시 등은 그 동안 구축된 한국에 대한 인식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하다.
지금 당장 시작해도 늦은 것이 바로 시민의식 세우기다. 내팽개쳐 두고 있다가 월드컵 임박해서 부랴부랴 캠페인을 벌이고 야단법석을 떨어봐야 볼상 사나운 촌극만 연출할게 뻔하다. 시민의식이 체질화한 일본과 비교하면 우리나라가 어떻게 비칠까 걱정이다.
지금 정부는 제 정신이 아니다. 새로운 남북시대를 열어가느라 바쁜데 집권후반기로 접어들면서 곳곳에서 권력 누수현상이 눈에 띈다.
공무원들은 잦은 개각에 눈치나 보며 움직이지 않고 있다. 검찰이나 경찰은 ‘강력대처’‘엄중조치’를 외치지만 일선 조직은 나몰라라다.
이러다간 국민적 에너지를 결집해 국가 재도약은 물론 민족화합의 원동력으로 활용할 수 있는 월드컵이라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국민들에게 자괴감과 패배감만 안겨주지 않을까 우려된다. 정부에 묻고 싶다. “월드컵 준비 정말 잘 돼갑니까?”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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