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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술 이야기 / 추석 차례상에 전퉁주 올려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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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술 이야기 / 추석 차례상에 전퉁주 올려볼까

입력
2000.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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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처럼 섬세하지도, 브랜디처럼 화려하지도 않다. 보드카처럼 억세지도, 데킬라처럼 자극적이지도 않다.군데군데 숭숭 구멍이 뚫린 옹기처럼 투박하면서도 자연스런 질감. 굳이 비유하자면 우리술은 그런 느낌이다.

현란한 서양술에 밀려 자리를 빼앗기긴 했지만 오랜 가양(家釀)의 전통 속에서 태어난 우리 토속주들에는 서양의 위스키도 흉내내기 힘든 멋과 풍류, 분위기가 담겨 있다.

선조들은 '백약(百藥)의 으뜸'이라고 했을 만큼 술을 즐겼다. 쌀과 누룩을 기본으로 계절마다 제철 재료를 섞어 정성스럽게 술을 빚었다.

한가위가 다가오는 이맘 때면 집집마다 마을마다 술 익는 냄새가 진동했을 터이다.

지금이야 집에서 술 빚는 풍습이 사라지긴 했지만 각 지방의 특색이 담긴 민속주들은 다양한 브랜드 제품으로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올 추석엔 차례상의 제주(祭酒)로, 손님맞이상의 반주로 우리 전통주를 올려보면 어떨까.

▥ 전통주의 종류와 특징

맥주나 위스키 같은 서양의 곡주가 술의 발효를 위해 맥아(麥芽·엿기름)를 사용하는 것과 달리 우리 전통술은 누룩을 쓰는 것이 가장 큰 특징.누룩 중에서도 밀을 껍질째 갈아 반죽한 뒤 곰팡이를 피워 만든 '막누룩'을 주로 쓰는데 이는 쌀로 만든 일본 누룩 '입국(粒麴)'과도 구별된다.

전통주는 제조방법에 따라 쌀과 누룩을 발효시킨 술밑(酒母)을 맑게 여과한 약주(혹은 청주), 술밑을 증류한 소주,약주를 거르고 난 찌꺼기에 물을 섞어 거른 탁주(막걸리)로 분류된다.

각각의 술들은 다시 부원료로 어떤 것을 배합하느냐에 따라 백하주,국화주, 이강주, 복분자주, 흑미주,산사춘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요즘엔 백화점이나 할인매장의 주류 코너에 나가면 갖가지 풍미를 느낄 수 있는 민속주들을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생쌀 빚기'라는 독특한 발효법을 사용하는 배상면주가에서는 찹쌀로 빚은 백하주,붉은 누룩(홍국)을 사용한 천대홍주,흑미를 발효시킨 흑미주, 구기자 천궁 인심등 18가지 한약재를 우려낸 활인18품 등의 약주를 시판중이다.

지역별로는 중요무형문화재 86호로 지정된 증류식 소주 문배주(평양)를 비롯해 배와 생강을 넣어 만드는 전주 이강주, 누룩에 찹쌀로 찐 술밥을 섞어 숙성시킨 김천 과하주,지리산의 서리 맞은 야생국화로 빚은 함양 국화주, 보리를 주원료로 한 진도 홍주 등이 대표적인 브랜드. 이밖에 진달래꽃을 넣어 빚은 당진 면천의 두견주,산딸기(복분자)의 과즙을 배양한 뒤 누룩을 섞어 숙성시킨 고창 복분자주,율무를 증류시킨 용인 옥로주 등도 전통이 깊은 민속주이다.

요즘엔 북한의 명주(名酒)들도 손쉽게 구할 수 있다. 북한술은 둘쭉, 오미자, 머루 등 제철 열매나 과일을 섞어 빚은 과실주들이 주류. 백두산에서 나는 들쭉 열매를 1년이상 숙성시켜 만든다는 백두산 들쭉술을 비롯해 물 맛 좋기로 소문난 강계 지역에서 생산된 강계머루술, 영지버섯을 넣어 발효시킨 백두산 영지술 등이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다.

벌꿀과 곡물을 발효시켜 빚은 아바이술, 증류주인 평양술과 개성소주도 북한의 명주로 꼽힌다.

▥ 전통주 제대로 음미하기

4대째 문배주의 맥을 잇고 있는 이기춘(문배주양조원 대표)씨는 "서양술은 먹기 전에 코로 향을 맡지만 우리술은 마시고 난후 입안에 남은 향으로 음미하는 술"이라고 말한다.

잘 익은 우리술엔 단 맛,신 맛,떫은 맛,구수한 맛,쓴 맛,매운 맛 등 6가지 맛이 녹아 있다고 한다.

이 맛들이 두드러지지 않고 함께 어우러져 입안에 한동안 여운을 남기는 술이 좋은 술이다.

발효주라는 점에서 서양의 와인과 유사한 전통약주는 와인처럼 격식을 갖추지 않더라도 색깔과 맛,향을 함께 음미하면 한결 운치가 있다.전통 약주는 전혀 과일을 사용하지 않은 술이라도 사과나 수박같은 과일향이 나는 것이 특징. 누룩의 밀기울 성분이 발효되어 생성하는 향기로 향이 강할수록 진한 맛이 난다.

약주는 부재료에 따라 색깔이 좌우되기도 하지만 대체로 황금색을 띠는 술이 많은데 호박빛에서 짙은 담갈색까지 농도가 다양하다.흔히 색이 엷을수록 담백하며,진할수록 맛도 진하고 오래된 술로 보면 무방하다.

전통 약주는 섭씨 8도로 차게 해서 먹는 것이 보통. 담백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은 더 차게, 다소 무거운 맛과 향을 좋아하는 사람은 덜 차게 마신다.

병을 처음 개봉할 땐 마개를 열자마자 술을 따르지 말고 잠시 기다려 병 속에 차 있던 미량의 가스를 날아가게 한 다음 잔에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술병이나 술잔도 이왕이면 오리병이나 자라병,편병,사발 등을 활용하면 훨씬 격에 맞는다.

▥ 우리술의 색다른 변신

전통주는 신세대나 여성들의 입맛에 맞게 칵테일로도 응용할 수 있다. 생각 외로 맛과 향도 훌륭하다.

서양 칵테일은 주로 무미의 술에 다른 재료를 넣어 새로운 맛을 창조해내지만 전통주 칵테일은 원료 술의 향과 맛을 증폭시키는 것이 특징.

배상면주가는 백화주와 유자,천대홍주와 오렌지즙,흑미주와 포도즙 또는 체리즙으로 다양하게 궁합을 맞춰볼 것을 제안한다.다음은 전통주 칵테일 만들기 예.

■국화 옆에서 백하주 50㎖, 유자청(또는 유자캔음료) 50㎖, 생수 15㎖, 설탕 5큰술, 레몬즙 3방울, 올리고당 약간을 믹싱글래스에 넣고 고루 흔들어 잔에 따른다. 유자청은 미리 믹서에 갈아 사용한다. 완성된 칵테일에 국화 잎을 띄워 멋을 살린다.

■남국의 정취 투명한 컵에 붉은 빛깔의 천대홍주 50㎖, 오렌지 주스(또는 오렌지환타) 35㎖, 생수 15㎖를 차례로 따르고 레몬즙 4방울, 올리고당 약간을 섞으면 서양의 '데킬라 선라이즈'에 버금가는 칵테일이 탄생한다.

■아랫목 이야기 물 50㎖에 오미자1.5g을 섞어 하루정도 우려낸 오미자국물에 천대홍주 50㎖, 올리고당 약간을 섞어 따끈하게 데워 마신다.

■내고향 7월 와인 맛이 나는 흑미주(50㎖)에 포도주스 35㎖, 생수 15㎖, 올리고당 약간을 섞어 믹싱글래스로 혼합한다. 포도 알갱이 한두개를 띄우면 운치있다. 포도의 계절인 초가을에 잘 어울린다.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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