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을 통해 북송되는 비전향장기수들은 1일 통일부에서 마련한 서울 종로구 평창동 북악파크호텔에서 북송에 따른 안내교육과 짐꾸러미에 대한 검색 등을 받고 남측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이들을 떠나보내는 가족 또는 친지들은 비전향장기수들의 환한 표정에 웃음을 지으면서도 또다른 이별에 대한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남북은 비전향장기수 송환방식을 놓고 육로와 항로를 놓고 엎치락 뒤치락하다 결국 7년전 리인모씨의 송환관례를 따라 2일 판문점을 경유한 육로
로 합의했다.
당초 북측은 지난달 23일 이들의 귀환을 위해 특별전세기를 김포공항에 보내겠다는 전화통지문을 남측에 보냈었다. 이에 정부는 “비전향장기수와 장관급 회담 남측 대표단 모두 판문점을 통해 육로로 보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북측에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측은 남측의 제안을 받아들여 지난달 27일 비전향장기수 송환과 관련, 판문점을 경유해 자동차로 귀환하는 방식을 택하겠다는 입장을 남측에 전달했다.
그러나 정부가 당초 계획한 남측 대표단의 판문점을 통한 방북은 완강히 거절했다. 한 북한전문가는 “북측이 남측대표단의 판문점행을 거부해놓고 판문점에서 환영행사를 통한 주민선전이 가능한 비전향장기수들의 판문점행은 허용하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서울 관악구 봉천동 ‘만남의 집’과 ‘우리탕제원’, 은평구 갈현동 ‘만남의 집’ 등에는 이날 아침 일찍부터 북송 비전향장기수들을 만나러온 민가협 회원, 민주노총 관계자, 남한에 남기로 한 장기수들로 북적였다. 방문자들은 북송 장기수들이 짐을 싸는 것을 도와주는가 하면 준비한 선물을 건네주며 북송 장기수들의 건강과 장수를 빌었다.
남한에 남기로 한 장기수 양희철(66)씨는 ‘우리탕제원’에서 함께 생활했던 윤용기(74), 조창손(71)씨 등에게 “평양에 가시더라도 잊지 마세요. 꼭 다시 만나뵐께요”라면서 환하게 웃어보였다. 학생운동으로 수감된 후 우용각(71)씨를 감옥에서 만나 양녀가 된 박애신(35·여)씨는 “아버님이 내년에 북으로 초청하기로 하셨다”며 ‘또다른 이산’의 아픔을 애써 참아냈다.
○…노모 고봉희(90)씨와의 북송을 희망했으나 좌절된 신인영(71)씨는 전날 성루광진구 중곡동에 사는 노모를 찾아 ‘마지막 밤’을 함께 보내며 작별인사를 드렸다.
아들의 손을 꼭 잡은 채 뜬 눈으로 밤을 지샌 고씨는 1일 오전 집을 나서는 아들 손에 “북에 있는 며느리에게 전해달라”며 지난 30여년간 사용해온 금브로치를 쥐어 주다가 끝내 눈물을 흘렸다.
○…북송 장기수 63명은 낮12시께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가든’에서 남쪽에 남는 동료들과 갈비탕, 된장찌개 등으로 ‘최후의 만찬’을 들었다.
남측 잔류 장기수들의 모임인 ‘통일광장’이 주최한 이날 자리에는 200여명의 가족·친지와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한 사회단체 관계자는 손수 만든 ‘진달래꽃’ 조화를 63명 모두에게 일일이 달아주며 이별의 아쉬움을 나누기도 했다.
○…북송 대상자 가운데 일본인 납치사건에 연루된 신광수(71)씨는 지난달 30일 전 동거녀인 박모(68)씨로부터 “오빠를 납치해 죽게 했다”고 격렬한 항의를 받은데 이어 이날 오후에는 북악파크호텔 앞에서 한 일본 기자에게 비슷한 내용의 ‘취재’를 당했다.
○…북한언론은 비전향 장기수들의 송환을 앞두고 특집보도 등을 통해 이들의 신상은 물론 북에 살고 있는 가족의 동정을 세세히 보도하고 있다. 특히 조총련 기관지인 조선신보는 1일 “비전향 장기수들의 송환은 통일의 새 희망으로 가슴 부푼 인민들에게 최대의 관심사도 되고 있다”며 “북한 전역이 이들을 맞이할 격정으로 끓어 넘치고 있다”고 북한의 분위기를 전했다.
이에 앞서 노동신문은 지난달 25일부터 사흘동안 3면을 모두 할애, 이들의 사진과 명단을 게재했으며 조선중앙텔레비전도 지난달 25일 저녁시간에 같은 보도를 내보내 분위기를 주도했다.
박진용기자
hub@hk.co.kr
양정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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