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길(金玉吉) 선생이 세상을 뜬 지 10년이 지났다. 격동의 한국현대사에 맞섰던 불꽃 같은 교육자이자, 삶 자체가 이화여대의 역사이기도 했던 이화인(梨花人). 그의 파란 많던 삶이 책으로 묶여져 나왔다.'김옥길 평전_자유와 날개'(이화여대 출판부 발행). 여성교육계 거목의 일생을 기록한 이 책은 그를 소중히 기억하는 이들이 노래하는 헌화가인 셈이다.
지은이는 언론인 이세기씨다. 김옥길 선생이 김활란 박사의 뒤를 이어 이화여대 총장에 오른 때는 5.16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이듬해인 1961년이었다.
이후 18년간 이화여대 총장으로 재임하면서 그가 짊어져야 했던 몫이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1964년 한일회담 반대시위, 1970년대 유신 반대 시위 등 대학은 시위의 소용돌이였다. 현실에 분개하는 학생들은 학교 밖으로 뛰쳐나가려 했고, 개발독재정권은 자유의 분출구였던 학교를 압박해 들어왔다.
그 틈에서 김옥길이 택한 것은 긴호흡의 발걸음이었다. "오래 가꾼 나무에서 아름다운 꽃을 기대할 수 있듯이 기다림은 꿈이 있는 사람들만의 자랑스런 특권이다.
눈앞의 손가락만 보고 멀리 떠 있는 달을 보지 못하는 자에겐 꿈이 있을 수 없다." 학생들의 눈을 뜨게 함과 동시에 인내심을 키워주는 것이 교육자의 몫인 셈이다.
1921년 평남 맹산에서 태어난 김옥길은 1943년 이화여전문을 졸업한 뒤 1953년부터 모교교수로 재직했다.
졸업후 기숙사 사감으로 일하다 미국유학을 떠난 4년을 제외하고는 줄곧 모교를 지킨, 이화여대의 큰 줄기였다. 1979년 후배에게 총장직을 물려준 후 1980년 '서울의 봄' 시절 문교부장관직을 맡아 교육×두발 자율화 정책을 펴며 "학교일은 학교에 맡기자"는 평소의 소신을 실천 했다.
6개월간의 짧은 장관직을 물러난 이후에는 충북 괴산군 고사리마을로 내려가 동네 아이들과 함께 남은 여생을 보냈다.
책은 그의 일생을 좇아가며 엄격했던 교육자적 정신뿐 아니라 호방하고 소탈했던 인간적 면모도 보여 준다.
동생인 김동길 전 연세대 교수와의 우애도 살갑다. 동생이 긴급조치 위반으로 옥살이했을 때 손수 뒷바라지를 했고, 대신동 집에 문패를 나란히 걸어놓고 살기도 했다.
손님 맞기를 즐겨했던 그는 정부 관리에서부터 청소원까지 초대해 직접 만든 평양냉면과 빈대떡을 대접, '옥길면옥 여주인'이란 애칭도 얻었다.
10년이 지나도 가시지 않는 후학의 그리움도 담았다.
"세속의 잣대로는 그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운 분" "바다라도 껴안을 듯한 포용력" "공과 사를 분별하는 투철한 정의감과 근저로부터 사람을 사랑하는 너그럽고 훈훈한 인심" "장렬한 희생정신" 등의 헌사로 이어진다. 아쉬운 것은 책에서 이런 부분이 지나치게 많은 점이다.
송용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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