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남북관계가 개선되면서 비무장지대(DMZ)의 평화적 이용에 대한 여론이 분분하다. 강원도와 경기도의 민통선 구역에 대한 개발제한이 완화, 철폐되더니 이제는 아예 DMZ까지 개발하자고 야단들이다.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사회 단체들도 ‘DMZ의 평화적 이용’ 혹은 ‘남북화해의 증진’을 내세우며 평화공원, 통일안보교육장, 생태교육장, 테마관광코스, 남북공동공단 등 각종 묘안을 짜내 DMZ를 개발하려하며 일부 정치인들은 ‘새천년 평화의 탑’을 세우자고도 한다.그러나 이런 구상과 제안들은 모두 분단의 아픔이 우리에게 남긴 귀중한 보물인 DMZ를 파괴하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물론 나름대로 합당한 사유들을 제시하고 환경 파괴를 최소화하는 장치를 마련해 추진하려할 것이다.
하지만 모두 DMZ 전체에 대한 종합적인 청사진을 결여한채 ‘너도 한건 나도 한탕’식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가 식상할 정도로 보아온 난개발이 재연될 징조마저 보인다.
문제는 조형물이나 공원같은 인위적 시설보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지키고 가꾸는 자연친화적 문화 전통과,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전망에 따른 정부 차원의 기획이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흥분과 성급함을 가라앉히고 이제 유엔도 인정한 ‘세계적인 생태계 보고’ DMZ를 있는 그대로 보전, 관리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우선 남북이 공동으로 DMZ를 그린벨트로 선언하고 이를 공동관리해야한다. 이렇게 하면 양방이 정치경제적으로 큰 부담을 갖지 않고 민족차원의 공동 프로젝트를 평화적으로 수행하는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한민족공동체의 구성원들이 20세기의 산업 문화를 넘어 21세기의 자연친화적 신문명을 지향하는 성숙한 사람들임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DMZ의 평화적 이용일 것이다.
만약 개발이 시작되면 이곳은 총소리만 없을 뿐 만인의 전쟁터가 될 것이 뻔하다. 우둔해 보이겠지만 지금 눈 딱감고 DMZ를 그린벨트로 묶어버리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책이다. 대신 민통선지역은 일정한 개발규칙의 제정과 꼼꼼한 시행을 전제로 개발제한을 풀어줄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독일 통일 이후 성급한 과거청산의 흥분때문에 역사적 기념물인 베를린장벽을 모두 파괴했던 독일의 전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겠다.
만약 DMZ가 그린벨트로 보전되지 않고 개발된다면 그간 환경파괴와 난개발을 부추기며 축적돼온 우리의 부동산재테크는 DMZ를 금방 너저분한 투기장, 유흥장소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평화와 통일을 위한다는 DMZ 개발을 방치하면 그 앞날의 몰골은 뻔하다.
남, 북이 각종 시설물 설치 경쟁을 치열하게 벌일 수도 있다. 독일인들이 흥분하여 베를린장벽을 모조리 부순 것을 후회하고 그 모형을 다시 만들어 관광객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어리석음을 우리가 다시 반복할 수는 없다.
DMZ의 그린벨트화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먼저 대통령직속의 가칭 ‘DMZ보전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북한과 관련법을 공동 마련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해야 한다.
그리고 남북 정부는 하루속히 DMZ보전관리를 위한 마스터플랜을 마련해야한다. 그래야 DMZ는 민족사의 산교육장, 세계적인 생태계의 보고, 지혜로운 정치적 결정의 사례로 남을 수 있다.
이제 남북의 정치 지도자들은 유권자와 현 세대만을 생각하기보다 자연과 후손을 생각하는 생명육성의 리더십(generative leadership)을 발휘할 때다.
/정윤재 정신문화연구원 교수·한국녹색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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