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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대인/ (6)엽기 문화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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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대인/ (6)엽기 문화 빛과 그림자

입력
2000.08.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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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없는 엽기는 포장일뿐…새로운 것에는 열광과 비난이 함께 하게 마련이다. 우리 문화의 한 문화 코드로 등장하고 있는 엽기. '한국식 엽기'는 어떤 성격을 지니는 걸까. 소년이 시체를 난자하는 장면이 있는 영화 '헤드 클리너' 는 '부엌칼 창작단' 이라는 한 인터넷 사이트에 공개된 것이다.

이 사이트의 기획 의도대로라면 엽기는 인간의 살상 욕구와 폭력 욕망을 담아내는 틀이다. 사이트는 또 '이불교'를 만들어 계명을 어긴 회원을 이불을 덮어 죽이는 '이불 데드(E_Bul Dead)' 라는 처형식을 갖는다.

외화 '이블 데드(Evil Dead)' 를 음차한 단어로 영화광이라면 독특한 호명만으로도 흥미를 느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말장난보다는 행위 자체의 잔인성에 더 주목하고 우려한다. 범죄사회학자인 곽대경 S1범죄에방연구소 자문위원은 이렇게 걱정한다.

"폭력적인 영화가 일상의 폭력을 유발하느냐 여부는 학자들 간에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폭력적 상황에 계속 노출될수록 더욱 강한 자극을 원하게 되는 것은 확실하다.

가상적으로나마 폭력적 상황에 많이 노출되면 극단적 상황에 부닥쳤을 경우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더 폭력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시체 사진을 모아놓은 사이트, 갖가지 살인 방식을 열거한 사이트 등을 보면 우리의 엽기 문화가 상당히 왜곡돼 있다는 지적이다.

곽박사는 우리와는 반대로 외국은 일반인들이 시신의 사진을 찍는 경우가 있는데, 인터넷 사이트에 오른 사진 대부분이 외국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한국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주장되는 경우도 생김새가 비슷한 일본 사람의 것인 경우가 많다는 분석이다.

살인, 시체 훼손 등 극단적인 엽기 취향은 문화현상의 병리학적 부작용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엽기'를 표방하고 실제로 '발랄한 엽기문화'의 확산에 기여한 김어준 딴지일보 대표는 "엽기의 부정적 측면과 긍정적 측면을 기계적 균형감각으로 재단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고 말한다.

그는 "부정적 측면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나 긍정적 측면이 훨씬 강하다" 는 입장이다. 딴지일보의 '역작' 중의 하나로 평가되는 '미국은 한국의 속국이었다' 등의 기획은 '발랄하게 뒤집어 생각하기' 의 대표적인 발상이다.

딴지일보가 표방한 엽기 문화는 발상의 전환, 주류의 전복, 상식의 회복, 발랄한 일탈로 요약된다. '규범'이라는 각질을 엽기라는 문화코드로 한꺼풀 벗겨봄으로써 보수와 진보의 금밟기를 시도하자는 뜻이다.

불붙기 시작한 엽기문화가 우리 문화의 틀을 얼마나 바꾸어 놓을 수 있을 지에 대해션 아직은 조심스런 견해가 많다.

현실적으로 시체 훼손 등의 극단적 엽기 문화는 콘텐츠 확보에 문제가 많으며, 때문에 앞으로 비슷비슷한 양상의 글과 사진이 올라올 경우 더 이상 흥미를 끌기 어렵다는 것이다.

황종연 동국대 교수는 "기괴하고 미숙한 것이 엽기라는 미명 하에 미래문화의 대안처럼 과대 되면 곤란하다" 고 지적한다.

탄탄한 뒤집기가 아닌 미숙하고 조악한 문화의 포장술이 될 때 엽기의 문화적 코드로서의 가치는 전락하고 만다는 뜻이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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