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낮 12시 서울 광화문 앞.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섭씨 30도가 훨씬 넘는 폭염의 도심을 걸었다. 소속 의원 등 200여명의 당직자들이 뒤를 따랐다. 민주당의 ‘선거 비용 실사 개입의혹’을 항의하는 도보 시위였다.이총재는 서울역에서 청와대 앞 도로까지 3㎞를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몇번 훔쳤을 뿐 내내 입을 꼭 다문 채 앞만 보고 걸었다. 시청 앞 지하철 입구에서 몇몇 시민이 ‘이회창’을 연호하고 박수를 보냈을 때도 말없이 손만 흔들어 보였다.
청와대 정문 앞 100㎙ 지점에서 여경들이 저지선을 치고 서 있자 이들과 악수한 뒤 버스에 올랐다. 의원들과 당직자들도 ‘거짓말 정권, 부도덕한 정권, 국민들은 분노한다’라는 플래카드만 내걸었을 뿐 구호를 외치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민주당의 전당대회가 열린 날. 침묵 시위는‘조용하게’ 끝났지만 앞으로 펼쳐질 가파른 대치 정국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한나라당은 시위가 끝난 뒤 내놓은 성명서에서 “오늘 침묵 시위는 무너져 내린 국가의 틀을 추스리라는 충정의 시위이자 국민의 분노를 전달하는 시위”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특별한 조치가 없을 때는 함성의 시위 등 특단의 조치를 강구할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김대중 대통령이 출국하기 전 인천에서 열릴 대규모 장외 집회를 염두에 둔 발언이다.
한나라당은 31일에는 이총재 취임 두돌을 맞아 내·외신 기자회견을 갖는다. 권철현 대변인은 “내외신 기자회견에서는 ‘선거 부정 은폐·축소’ 문제 뿐 아니라 남북 문제, 경제 문제 등 현 정권의 총체적 난맥상을 모두 짚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나라당의 공세 포인트가 국정 전반으로 확대, 전면적인 대여 투쟁으로 바뀐다는 뜻이다.
최성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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