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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의 사제'로 살아온 4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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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의 사제'로 살아온 45년

입력
2000.08.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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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나물 대가리만/ 오선지에 긋는 고슴도치 같은/ 선량한 그 양반’.시인 김영태는 시 ‘반지’(半紙)에서 오랜 친구인 작곡가 백병동(서울대 교수·66)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소리를 찾아 헤매는 구도자처럼 살아온 그의 결벽과 고독, 옹고집을 고슴도치에 비유한 것이리라.

한국 현대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그의 관현악 작품전이 9월 5일(수) 오후 7시 30분 호암아트홀에서 열린다.

임헌정이 지휘하는 부천시향이 세계 초연하는 신작 ‘해조음’(海潮音)을 비롯해 피아노협주곡(1974), 소프라노와 관현악을 위한 ‘꽃에 관한 네 개의 가곡’(1996), ‘관현악을 위한 2장’(1996)을 연주한다.

김영태 시에 의한 ‘꽃에 관한 네 개의 가곡’은 본래 피아노 반주인 곡을 관현악으로 개작 초연하는 것이다. 피아노 문익주, 소프라노 김인혜가 협연한다.

한국 작곡가의, 그것도 관현악 작품만 모아 연주하는 것은 국내 처음이 아닌가 싶다.

관현악 작곡은 실내악이나 독주곡보다 훨씬 힘든 일이지만, 애써 작곡해도 한국 창작곡을 홀대하는 국내 풍토 때문에 연주 한 번 안되고 서랍 속에 잠자는 악보가 얼마나 많은가.

이번 무대는 그의 제자 모임인 운지회가 준비했다. 내년 2월 정년 퇴임을 앞둔 스승에게 바치는 존경의 표시다.

올해로 작곡 생활 45년. 그는 ‘음악은 나를 지탱하는 힘’이라며 ‘한 번도 작곡가 된 것을 후회해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독주·실내악·가곡·관현악·오페라 등 100여곡이 넘는 작품을 썼다. 그 많은 작품의 마지막 정화는 무엇일까. 그는 “나 자신을 위한 ‘레퀴엠’(진혼곡)을 꼭 쓰고 싶다”고 말한다.

그것은 스스로 ‘반생의 결산’이라고 말했던 ‘오보에와 관현악을 위한 진혼’(1974) 이후 필생의 작업으로 마음먹은 일이다.

최근 10년간 그의 작품은 예전보다 ‘간결하고 쉽고 담백해졌다’는 평을 듣는다.

“기술적으로 쉽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어렵다는 것이고, 간결한 음의 사용은 그 음을 선택하기까지의 고민이 더 과중해지는 것이어서 더 어려워지는 것이 작곡이 아닌가 생각한다.”

본래 말수가 적은 그지만, 그의 음악은 점점 더 음을 줄여가고 있다. 대신 예리한 직관과 맑은 서정이 갈수록 깊이를 더하고 있다.

5척 단신에 바싹 마른 나뭇잎처럼 가벼운 몸피, 노안에 깃드는 소년처럼 수줍은 웃음의 이 작곡가는 덜고 덜어서 마침내 허허로운 자유에 이르고자 함이 아닐까.

소리 자체의 내면적 울림을 탐구해온 그를 음악학자 김춘미(한국예술연구소장)는 ‘음의 생명사상으로 귀의한 작곡가’로 요약한다.

‘음의 생존 자체에 관심을 갖고’‘결벽에 가깝게 음의 실존을 추구하는’그의 자세는 ‘소리의 사제(司祭)’다운 것이다.

이번 연주회에 맞춰 그의 관현악곡·가곡·국악작품 실황연주(1989~99년)를 담은 음반 ‘연주 현장의 기록’(3CD)이 나온다.

서울대 서양음악연구소(02_880_7908)가 비매품으로 제작, 실비만 받고 우송해준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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