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소비자단체가 이른바 ‘소비자 주권대상’이라는 행사를 주최하면서 국회의원과 장관 등을 시상위원으로 한 협찬요청 공문을 100여개 유명 기업에 보내 물의가 빚어지고 있다.25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18일께 대기업과 백화점, 유명 중소·벤처기업 등에 ‘조직위원장 박광태(국회 산자위원장)’의원 명의의 ‘2000 소비자주권대상’ 시상식관련 공문이 발송됐다.
C소비자단체가 보낸 공문에는 “자문위원단의 자문으로 선정된 14개 부문 135개 품목의 제품에 대한 1만2,000여 소비자평가단의 평가에 의해 귀사의 제품이 선정됐으니, 시상식 및 일간지 광고의 비용으로 품목당 600만원을 19일까지 입금해달라”며 단체 대표 김모씨 명의의 은행 계좌번호를 제시했다.
공문은 또 22일 오후2시 전경련 국제회의장에서 열릴 시상식에 조직위원장인 박의원을 비롯, 이규택 국회 교육위원장, 정대철 민주당부총재, 안택수·김호일·권기술 의원 등 국회 재경위와 산자위 소속 의원들과 신국환 산자부장관 등이 시상위원으로 참석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주최측은 22일 낮 12시께 “박의원과 신장관이 일정상 참석을 못하게 됐다”며 시상식을 돌연 연기했다.
이날 행사장을 찾은 A기업 관계자는 “시상위원 면면이 워낙 화려해 일단 행사를 보고 광고비 지출여부를 결정하려 했다”며 행사 취소에 당황해 했다.
B기업 관계자는 “아무런 배경 설명없이 고위층 명의의 공문 한장으로 광고협찬을 요청해와 불쾌했다”며 “유명 정치인들의 이름때문에 상당히 부담을 느겼던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의원측은 “조직위원장직을 수락해준 적이 없다”며 “명의도용에 의한 사기와 명예훼손 등 혐의로 C단체를 경찰에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박의원측은 “21일께 정대철의원 주변인사의 딸이 찾아와 시상식에 참여해주면 후원금 1억원을 제공하겠다는 제의를 해왔으나 거절했다”고 덧붙였다. 시상위원으로 공문에 명기된 안의원측도 “동의해준 적도 없고, 동의를 요청받은 적도 없다”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이와 관련, C단체측은 “상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사전 약속을 받고 국회의원들을 자문위원과 시상위원으로 위촉했다”며 “기업과의 약속을 지킨다는 차원에서 어떻게든 박의원을 행사에 참석시키기 위해 후원금을 제의했다”고 해명했다.
C단체 관계자는 또 “광고 협찬 여부는 순전히 기업의 의사에 맡긴 것”이라며 “당초 시상식 참가의사를 밝힌 기업은 60~70개사 정도였지만 실제 광고비를 입금한 업체는 아직 없다”고 말했다.
한편 C단체는 지난 20일 135개 분야별 ‘2000소비자주권대상’ 제품과 해당 기업 명단을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으나, 심사에 참여한 11명 자문위원 명단에 포함된 일부 국회의원과 교수 등도 “제품 심사과정에 참여한 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강 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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