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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칼럼] '김정일회장-김대중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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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칼럼] '김정일회장-김대중전무'

입력
2000.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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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전대통령이 어제 내외신기자회견을 갖고 정부를 강도높게 비판했다. 결국은 김대중대통령을 겨냥한 회견이지만, 골자는 정부의 통일정책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바탕으로 통일개념을 규정한 헌법 제4조에 정면배치된다는 것이었다.6·15선언 중 ‘남한의 연합제안과 북한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공통성이 있다’고 밝힌 부분은 1국가 2체제를 인정한 것이므로 헌법에 위배된다는 지적이다. 김 전대통령은 또 정부가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논리와 주장에 일방적으로 끌려가고 있다고 비난했다.

김 전대통령의 주장에 타당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6·15선언에 거론된 통일방안이 정부의 공론화한 통일방안이 아니라 김대중대통령 개인의 통일방안이며, 긴장완화에 관한 부분이 빠져 있는 것이 큰 문제라고 지적하는 학자들도 있다.

정부의 대북협상태도가 석연치 않고 저자세라는 인상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김정일국방위원장을 스타로 생각하거나 이북풍을 흉내내고, 남파간첩등 비전향장기수를 무슨 민주투사시하는 최근 분위기는 우려할 일임에 틀림없다.

아무리 남북관계의 진전과 통일이 중요하더라도 문제점은 가차없이 지적돼야 하며 정부의 잘못된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우려와 비판은 항상 필요하다.

하지만 어렵고 민감한 대북관계 국정을 운영한 경험이 있고, 현재의 남북관계상황에 무한책임이 있는 분이 이런 발언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본다.

김 전대통령은 “북한은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공산독재국가”라며 김정일위원장의 서울방문에 앞서 6·25도발에 대한 분명한 시인과 사과, KAL기 폭파·아웅산 테러사건에 대한 사과를 강조했다.

본인이 몹시 아쉬워하는 것으로 알려진대로 94년에 김일성주석이 사망하지 않고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더라면 한반도의 정치지형은 많은 부분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내가 김주석을 만났다면 6·25전쟁 책임문제를 거론했을 것이며 김주석이 상당히 양보했을 것”이라고 말한 대목에서는 어쩔 수 없이 김대통령에 대한 시기와 질시의 감정을 읽게 된다.

김 전대통령이 정상회담에 나섰더라면 6·15선언과 같은 합의가 나올 수 있었을까. 문제는 바로 이런 점이다. 지금까지 김 전대통령의 발언에서는 나라의 큰 틀을 생각하는 전직 국가원수로서의 금도(襟度)와 경륜을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가 발언할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기보다 외면하거나 모욕과 모멸감을 느끼곤 했다. “전직 대통령도 할 말은 해야겠다”, “내가 발언을 하지 않으면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라고 하지만 김 전대통령은 이미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김 전대통령은 지난 해 부마항쟁 20주년 행사가 열렸을 때 면전에서 김대통령을 비난하는 연설을 했다.

외국기자들까지 불러 모은 어제 회견에서도 김정일위원장과 김대통령의 위상을 회장과 전무, 대통령과 장관으로 비유하면서 김대통령을 깎아 내렸다니 실소를 금할 수 없게 한다.

설령 백번 옳은 주장을 하더라도 전직 국가원수의 발언방식에는 일정한 격과 품위가 있기를 국민은 기대하고 있다.

분명 김대통령의 국정운영에는 잘못이 많다. 하지만 김 전대통령이 말하듯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는 독재자’라고 생각하는 국민은 많지 않다.

집권 전반기를 결산하는 시점에서 각 언론사가 조사한 지지도를 보면, 편차는 심하지만 대체로 반수 이상이 김대통령의 국정운영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최근 1년동안 40%를 맴돌던 지지도가 50% 이상으로 높아졌다는 조사결과도 있었다. 집권 초기인 93년 봄에 지지도 90%를 넘을 만큼 인기를 누렸던 김 전대통령은 인기의 허망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겠지만, 어느 시대이든 지지도조사에는 당시 국민정서와 원망(願望)의 진실이 담겨 있다고 봐야 한다.

김 전대통령은 되도록이면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무엇 때문에 얻는 것 없이 스스로 점수를 잃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다른 나라처럼 전직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에게 조언을 하고 자문에 응하면서 유유자적하는 모습을 볼 수는 없는 것일까.

/편집국 국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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